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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May 19. 2022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우리 엄마는 내가 지킬 거야.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이 다 모였다. 작년 추석 이후 처음이었다. 엄마는 류머티즘과 심장질환 약을 오래 복용하면서 독한 약을 이기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셨다. 지나치게 잠을 많이 주무셨고, 코로나에 걸린 이후에는 기억력이 급격히 나빠져 치매 검사를 앞두고 다. 그간 감정의 기복도 많이 사라져 슬퍼도, 좋아도 덤덤하셨던 분이 자식들이 다 모이니 해맑게 웃으신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리 엄마, 잘 웃네?"

"응,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

우리를 둘러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여기 다 좋은 사람들만 있잖아."


  자식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시다니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결혼 한 이후에 생일 아침이면 한 번도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 축하해 주셨는데, 막내딸 생일인지도 모르셨다. 남편이 넌지시 말씀드렸는지 엄마는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생일 축하해. 엄마가 기억을 못 해서 미안해. 낮에는 생각이 났는데 전화하는 걸 깜빡했어."  

"엄마, 괜찮아. 잊을 수도 있지. 이렇게 예쁘게 낳아주시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마흔여섯 살 된 딸 생일을 잊는 게 뭐 대수란 말인가. 하지만 가끔씩 나를 조카딸이라고 칭할 때는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 난 엄마 막내딸 유진이잖아."

"응, 그렇지. 내가 요즘 얼른 생각이 안 난다. 어쩔 땐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을 때가 있어."


  엄마는 당신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고 계고, 자꾸만 생각이 둔해지고 말이 잘 안 나온다며 속상해하셨기에 이내 안심시켜드렸다.


"괜찮아. 나도 생각 안 날 때 많은걸. 엄마, 괜찮아요."


  어버이날을 축하드리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아빠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더없이 흐뭇해하셨다.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엄마가 아파서 걱정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픈 엄마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 언제 어느 때 잘못될지 모르는 일이라며 장례 관련 말씀도 꺼내셨다. 엄마는 조용히 듣고 계셨고, 아빠가 눈물을 보이는 순간에는 모두가 애써 눈물을 삼켜야 했다.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다. 제일 북적대는 우리 집에서 지내시면 엄마가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종일 엄마 곁에 있으면서 기억을 놓지 않게 돌봐드리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싫다고 하실 분이 그러마고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간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모셔오려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셨는데 순순히 따라나서시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이렇게 가까운데도 한 번을 안 와봤다며 미안해하셨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낮에도 수시로 주무시던 엄마가 자정이 넘었는데도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엄마와 마주 보고 누워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새벽까지 두런두런 나누었다. 엄마는 분명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셨다. 어린아이 다루듯 애정을 듬뿍 담아 간간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안아주기도 하니 엄마가 읊조리듯 말씀하셨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나는 되물었다.

"엄마, 행복해?"

엄마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셨다.

"응, 행복해. 이렇게 보살핌 받고 사랑받아서 너무 행복해."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코로나 시기를 지내면서 엄마가 느꼈을 진한 외로움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살기에 급급해 엄마 살필 생각조차 못한 못난 딸이 울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너무 외로우셨구나.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기억마저 잊으셨구나.'


  엄마를 위해 소리 내어 기도하는 동안 아멘, 아멘 하시더니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드셨다. 집에 오신 후 여기가 어디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던 엄마. 행여나 주무시다 깨어 낯선 환경에 놀라실까 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엄마가 딸네 집에서 마음 편지내시기만을 바랐다.


  부분적으로 기억을 못 하는 엄마를 처음 대할 때 절망하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 며칠 엄마를 돌보는 동안 어느 정도 기억의 패턴을 알게 되었고 차츰 희망을 품었다. 엄마는 낮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가 오후가 되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이모, 삼촌들 이야기를 하셨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엄마의 '셋째 언니'가 되었다.


'엄마는 좋아지실 거야. 우리 엄마는 내가 지킬 거야.'


  그간 결혼하고 내 식구들 챙기느라 부모님께 소홀했던 시간들을 만회할 기회가 온 거라 여기 오히려 감사하기로 다. 아빠는  엄마가 우리 집에 와 있는 동안  얼굴이 환해지고 식사량도 많이 늘었다고 좋아하셨다. 산책 엄두도 못 내던 엄마가 힘을 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이 때로는 눈물겹다.


"엄마, 다리가 아파져도 조금만 참고 걸어요. 그래야 힘이 생기지. 엄마 다리 튼튼해지면 우리 여행도 가요."


평소 여행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던 엄마가 그러자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엄마 건강에 위기가 찾아오자 우리 삼 남매는 똘똘 뭉쳤다. 그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던 우리는, 부모님을 살펴드리며 욱 돈독해져 다. 형제간의 우애를 중요시했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엄마가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미안해하시길래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이렇게  잘 키워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엄마, 아빠 책임지고 보살펴드릴 때라고 큰 소리도 쳤다. 엄마가 활짝 웃으신다. 행복하다는 말씀도 자주 하신다. 그래, 그거면 됐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 사랑과 관심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엄마, 이렇게 마음행복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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