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역자의 소고
# 누가, 무엇을
1. 첫 번째로, 현대 목회자들 특별히 지금 담임 목사직에 앉아있는 이들 중에는 '자기 목회'만 하고 은퇴하려는 비겁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본인들 정년 시기는 슬그머니 늦추는 모습이 실소를 자아낸다.
2. 본인의 설교는 써내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에서 대충 긁어온 설교문을 주일 예배 때 버젓이 사용하는가 하면, 수준과 함량이 모두 미달인 설교를 가지고서 자신보다 한참은 좋은 학력과 성실하게 준비한 부교역자들의 설교와 비교하고 이를 닮으라 말한다.
3. 쉽게 말해서 후배들 발목 붙잡고 어떻게든 거꾸러뜨리려는 못된 심보로 목회를 하며, 평일에는 본인의 업무를 부교역자들에게 던져놓고 노회니 시찰회니 주변 목사들과 밥 먹고 놀러나 다니는 이들도 참 많다.
4. 성도가 사역자들 고생한다고 밥 사먹으라고 준 돈을 가지고서 얼마 하지도 않는 싸구려 음식을 먹고, 차액은 고스란히 본인 주머니에 챙겨놓는다. 그리고 다시 강단에 올라 말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면 하나님은 그 갑절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5. 이미 염증을 느낀 유증하고 젊은 인재들은 이 바닥을 떠난다. 남은건 밀어주고 당겨줄 목회자 아버지가 있거나, 사태 파악을 못하는 멍청이거나, 자기 인생 따위는 소명을 위한 불쏘시개로 던지려는 이들로 정리된다.
6. 누구의 책임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신앙인이라면 상투적으로 으레 그러듯 "그 일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7.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하는가? 사실 이 지점이 가장 머리를 맞대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민하기에 현재 신학교와 교회현장의 연계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방만하며, 종교특권층은 신학도가 죽어라 공부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깨어있는 지성과 불타는 영성으로 사역에 임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8. 적당한 엔터테이너, 적당히 예배 전후로 흥을 돋워줄 찬양인도자, 피피티 넘기는 사람, 자기 의전해줄 사람, 애들 놀아줄 사람, 꼬장 부리고 싶을 때 대충 받아줄 사람을 원한다. 말 그대로 입닫고 순종하는 그런 종이다.
9. 권위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엇나간 종교와 세상을 향하여 뜨거운 구령의 심장을 터뜨리던 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무엇을 위한 부흥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방언이었는가? 사도 바울이 적은 편지처럼 '사랑 없이는' 이 모든 게 다 헛수고다.
10. 오랜만에 이런 글을 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오랜만에 마음이 아팠고, 오랜만에 뒷통수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생각이란 것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내 영혼이 잠에서 깨어났다.
11. 눈을 뜬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개인의 외침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이고 다발적인 거대한 단절과 소외의 소용돌이였다. 그러나 다시는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12. 외면할 수 없는 어딘가에 우리의 부르심이 있다. 지나칠 수 없는 아픔에 우리의 사명이 있다. 내가 긍휼을 품는 대상이 내가 따라야 할 예수의 길이다. 어쩌면 나는 그토록 외면하던 이곳을 다시 사랑하게 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