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님의 솔루션]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 상담사님과의 대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솔루션이 있다. 몇 차례의 상담을 통해 내 문제의 근원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 받았다. 바로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어쩌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린 단어가 바로 ‘괜찮아’가 아닐까 싶다.
메모지에 적어서 아침에 일어나고 자기 전에 한번씩 읽는다. 진심으로 토닥여준다.
“괜찮아. 오늘 하루도 잘한거야.”
“잘 잤어. 괜찮아”
미래가 무조건 괜찮을거라는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괜찮아였다. 상담사님은 내게 잘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씀 하셨다.
“아무나 그렇게 열심히 할수는 없어.”
너무나 와닿는 단어였다. 남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게 아니다. 나는 밤낮 없이, 주말 없이 달리던 몇년을 보냈다. 가만 있으면 미칠 것 같은 죄책감과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럴때면 밖으로 나가 뭐라도 해야했다. 아르바이트를 늘리고 공부하는 시간을 더 늘렸다.
가만히 앉아 쉬는건 쉬는게 아니란 생각에 무조건 나가서 한강을 배회했다. 그냥 공기를 느끼며 바람을 맞으며 걸어도 충분했을 시간에 나는 바삐 움직이며 좋은 풍경을 보는게 무조건 쉬는건줄 알았다. 사실 나는 벤치에 앉아 바보 같다고 느껴질 만큼 눈을 감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채찍질 하지마.”
나를 울게하는 말이었다. 나뿐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죽음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다. 숨만 붙어서 사는게 어디 사는 삶인가.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을 포기한다. 그리고 다시 행복하기 위해서 포기했던 것들을 주워담으려고한다. 성취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걸까. 언제 올지도 모르는 행복을 위해 지금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 초라한 행복이라며 걷어 차버렸는지 모른다.
“노력하는 그 순간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있어.”
지나치던 일상에 하루에 느낄 수많은 기쁨이 있었고, 스치는 만남에 감동이 있었다. 그랬을텐데 너무 많은걸 보내고 살았다. 그런게 어른인줄 알았고, 그래야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될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어째서 지금을 포기해야했을까. 노래 가사 처럼. 지금 이순간. 지금 여기에. 날 묶어온 사슬을 벗어 던질수는 없었을까? 견디는 사람이 되려고, 포기해서 행복해지려고 스스로에게 못해준 말들을 이제 다시 해주자.
“아무나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어 그치? 그러니까 괜찮아. 잘했어.”
잠들기 전에 당신의 하루를 꼭 격려해줬으면 한다. 몇년이 걸렸을 이 치료법이지만 당신에겐 더 짧은 시간에 더 큰 위로가 있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고]
저 말을 듣고 글을 써놓은 후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이 말들을 지금도 내게 가끔 들려주곤 한다. 지금은 나도 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 나름 많은 시도를 해보고 있고 내가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떨까? 나는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당신을 항상 생각한다. 글을 읽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 당신에게 나는 편지를 쓰듯 글을 전한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있을 때 마다 스크리브너와 브런치를 킨다. 그리고 베어 어플을 켠 후에 메모한 글들을 훑어 보며 글감을 찾아 단편의 에세이를 작성한다.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이 없었지만 이전에 해두려 적어뒀던 말을 마침 찾아서 위로를 느끼다 나누고 싶어 가져왔다. 그대도 열심히 살고 있을 텐데, 그대도 아무나 살 수 없는 그대만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텐데... 잘 했다. 잘하고 있다. 그리고 고생했다. 그러니 스스로를 조금만 더 인정해줬으면 한다. 그럴 수 있는, 당신은 그래도 될 만큼 그대 생각보다 조금 더 가치 있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