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시험 보는 날
기능 시험을 보는 날,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대기실은 장내 기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나 둘 시험장에 사람들이 도착하고 벽에 걸린 티비에서는 로스엔젤레스의 돌비 극장 풍경이 보였다.
지난 며칠 간 뉴스와 라디오에서 <기생충>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봉준호가 얼마나 훌륭한 감독인지 귀에 박히도록 들은 터였다.
나는 <기생충>이 개봉했을 당시 친구와 함께 봤는데, 영화가 끝난 뒤 어쩐지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영화관 위층의 쇼핑센터로 간 기억이 난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단풍나무로 만든 서랍장, 백자 다기와 그릇, 유리잔과 소서, 아로마 룸스프레이, 겨울용 린넨 파자마와 순면 침구 세트, 체크무늬 커버를 씌우 빈백 소파와 라탄 러그, 삶을 아늑하게 만드는 모든 것…
그것들을 보며 영화의 결말로 씁쓸해진 마음 어딘가에 지혈제를 뿌렸다.
있는 줄도 몰랐던 지하실이 내 마음에도 있던 것이다.
<기생충>에는 상반되는 두 집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강렬하게 기이하다.
둘 다 4인 가족이 사는 곳임에도 한쪽은 반쯤 지하에 파묻혀 지상을 욕망하고, 한쪽은 지상 위에서 온갖 부를 진열해놓고 살지만 정작 자신들의 지하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특히 기억나는 건 기택이 동익의 집에 운전수로 취직하기 위해 벤츠 매장에서 운전법을 익히는 장면이다.
벤츠S클래스는 동익이 가진 부의 상징 중 하나이자 기택이 동익과 연결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기우는 과외, 기정은 미술, 충숙은 가사를 통해 동익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기택은 유일하게 가족 중 저택의 바깥에서 동익 가족의 삶과 연결돼있다.
연교를 통해 자유롭게 집 안팎을 오고가지만 어디까지나 저택 속 사람들이 허락했을 때 뿐, 기택은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손에 벤츠 운전대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이하게 느껴졌다.
하나 둘 장내 시험을 치르고 서류를 받아 시험장을 떠났다.
방송에서는 감독상 호명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대기실에 남은 몇몇이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앞으로 두 사람 다음이 내 순서였다.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을 받았으니 작품상 수상도 가능할 것이라는 인터넷 뉴스가 오 초에 한 번씩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왔다.
심장에 뻘낙지가 들어간 것처럼 불규칙적인 두근거림이 거세졌다. 봉준호가 받겠지? 작품상은 받지 않을까?
순간, 나는 어젯밤부터 준비해둔 마인드컨트롤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만약 오늘 기능 시험에 떨어진다면 이건 모두… 봉준호 때문일 거야.
왜때문에 아카데미는 오늘 열려가지고, 하필 내 기능 시험 날!
심호흡을 하며 내내 익혀 둔 시험 순서를 중얼거렸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됐다.
운전석에 앉아 좌석을 조정하고 안전띠를 벤 뒤 기어를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시동을 킨다…
드디어 운전자가 되는 일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면허를 준비하는 약 한 달 반 동안 나는 소설을 쓸 때처럼 집요해졌다.
그러나 그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운전은 잘 못하면 그냥 못하는 거지만 망하지는 않는다.
엉망이 된 문장과 뒤죽박죽 섞인 플롯을 보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난감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대신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사고를 내서 차가 망가지거나 내가 망가지거나…
그러나 운전을 못하면서도 조심할 수 있지 않나.
운전에 능숙하지 않지만 자신감에 차 있을 수도 있다.
소설은 그 모든 게 한꺼번에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적어도 나는…).
자신감으로만 된다면 나는 벌써… 벌써 하여간 뭐라도 ‘됐’을 것이다.
기우가 외치던 ‘기세’는 확실히 힘이 세지만, 그것만으로 결말에 가 닿을 순 없다.
완벽한 결말이란…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가는 마음으로 소설을 쓸 수는 없을까? 즐겁고 희망차게?
나는 왜 소설 생각만 하면 사고가 예견된 초보 운전자같은 마음이 드는 걸까?
하여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운전석에 앉아 시험이 시작하길 기다린다.
준비를 하고 시동을 걸면 약 5초 뒤 시험 시작을 알리는 부저가 울린다.
야트막한 동산을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기능 시험이 시작된다.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핸들과 기어를 조작해 정해진 코스를 따라 시작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삶도 이렇게 순서대로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예측한대로, 안전하게,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 없이, 정해진 대로, 정답이 있는, 차근차근, 약간의 암기와 용기, 그런 것들로 완성할 수 있다면.
그러나 삶은 기능 시험이 아니고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얻기도, 잃기도 한다.
누가 알 수 있었을까, <기생충>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수많은 명성을 펼칠 거라는 걸, 기택 자신이 벤츠를 몰며 저택의 가장자리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걸, 내가 처음 본 기능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해 머지않아 면허를 취득하게 된다는 걸, 과거의 우리가 미래를 알 길은 없다(적어도 타임머신이 없는 지금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껏 계획한 대로 모든 삶이 이뤄졌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웠을 것이다.
계획은 언제나 최고의 상태를 지향하지만, 그게 항상 즐겁기만 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코스를 마친 뒤 마지막 코너 앞에서 핸들을 돌린다. 기능 시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다.
바깥 차선을 따라 크게 핸들을 돌리며 방향을 튼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남은 시간은 넉넉하다.
나는 여유롭고 부드럽게 운전한다. 마치 오랫동안 그 차를 몰아본 사람처럼.
내가 잘 아는 길을 가는 것처럼.
그 순간에는 내가 시험 중이라는 것도, 앞날이 불안정한 프리랜서, 노동자, 소설가라는 것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
단지 아주 약간의 중력과 긴장감, 내가 그걸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안다는 마음 뿐이다.
씁쓸함은 온데간데 없다. 눈앞에 출발지가 보인다.
기능 시험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