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약을 먹으면 여기서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네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 영화 '매트릭스' 중 대사
보통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파란 약을 먹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일들은 전부 잊고서 단지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을 보내겠다며, 마치 세상의 중심에 너와 나 단 둘만 있을 뿐이라 속삭인다. 그렇게 단비와 같은 주말의 시간은 내가 다짐했던 일들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아니,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신데렐라의 마법과 같은 시간이 끝나면 어느덧 내 손엔 빨간 약이 들려있다. 다시 현실을 마주할 때. 내일이면 다시금 출근이며 여자친구와 나 단둘이 아닌 세상 사람들과 함께라는 것을 지각해야만 한다.순간을 위함이 아닌 내일과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거의 매주를 서로 다른 색 약으로 번갈아가며 먹어대니 속이 쓰리다. 어지럽다.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네오' 조차도 이렇지는 않았을 터. 그도 그럴 것이 빨간약 한 알만 먹고 선 쭉 영웅노릇을 해왔으니까 헷갈릴 이유도 없었겠지.
나도 그냥 한 가지만 택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난 영웅도 뭣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이니까.
파란 약을 먹는 건 결국 버티기 위함이다. 당장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아주 잠깐이지만 유예시간을 두는.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다는 것, 누구보다 잘 안다. 단지,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만, 쉬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