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문 Don Kim Dec 17. 2020

<Sand Storm>, 여권 변화의 바람을 바람

영화로 떠나는 아랍 여행 - 이스라엘 남부


Sand Storm 모래 바람 '아시파트 라말리야' «عاصفة رملية» (일리트 젝제르 감독, 2016년 작품)


이슬람, 이슬람 국가, 무슬림 등의 단어는 마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긍정적인 느낌보다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여성 인권 억압, 테러 등의 그림이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는 이들도, 유명 관광지 점찍기를 하듯 그곳을 방문한 이들도, 기도하는 장면이나 테러, 이슬람으로만 연결 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영화는


이런 이들에게 90분 분량의 이 영화는 우리의 그 닫힌 시선에 균열을 내줄 것 같다.  그래서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좋은 영화',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내 나름의 몇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다. 물론 전문가의 평가에는 관심 없고, 나의 관심사에 따른 나의 평가이고 반응이다.


스토리텔링, 내러티브가 살아있다. 사실 하나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화면이 자연스럽게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그러면서도 섬세한 상징, 그림 언어가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사실 아랍의 이야기도 성경 속 스토리도 이 그림 언어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영화 줄거리?


한 유목민 남자 술레이만(Suliman)이 둘째 부인을 맞이한다. 둘째 부인을 위한 신방을 꾸미고 잔치를 준비하는 일, 그 둘째 부인을 맞이하여 환대하는 일, 둘째 부인을 맞이하는 결혼 잔치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환영의 춤을 추는 일, 잔치 뒤처리 등 이 모든 일을, 첫째 부인 잘릴라(Jalila)이 마주한다. 자신의 남편의 둘째 부인이 될 신부를 맞이하면서 '마부룩'(축하한다)라고 말한다.



둘째 부인과 남편이 사는 공간은 전기불도 들어오고 가구도 살림살이도 가전제품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첫째 부인과 아이들이 사는 공간은, 호롱불을 사용하고, 저녁에는 어둡기가 그지없다. 신혼방 냉장고에는 먹을 것도 채워져 있다. 그러나 첫째 부인의 생활공간은 그야말로 낡아빠진 채 그대로고, 모든 것이 부족하다.


사실 둘째 부인이 들어오면서 첫째 부인과 아이들은 후미진, 허름한 공간으로 내몰린 것이다. 누군가의 개선, 혁신이 누군가에게 내몰림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들 부부의 큰 딸 '라일라'(Layla)이다.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것에서 캠퍼스 커플을 이룬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결혼을 반대한다. 아니 다른 혼처를 마련한다. 갈등을 겪던 딸은, 끝내는 집안의 평화라는 것을 위해 아버지가 주선한 중매결혼을 받아들인다.



영화 속 상징과 그림 언어



영화 속에 그림 언어는 많다. 자동차, 자동차를 모는 여성은 혁신과 변화이다. 딸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아버지는 깨어있는, 전통에 갇히지 않은 열린 시선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이 자동차는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맞이할 때도, 둘째 부인을 위한 살림살이를 장만하러 오가는 장면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 큰 딸은 그 차를 몰고, 동생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는 엄마를 찾아 외가로 향한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맏딸과 다른 세 명의 작은 딸들이 같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자들의 대물림? 대물림 못지않게 대를 잇는 것이 중요했다. 대를 잇고 싶어 아버지는 둘째 부인을 맞이한 것인가?



둘째 부인의 신혼방을 준비하느라 맏딸과 침대를 조립하는 와중에, 첫째 부인의 전통복 치마가 침대 모서리에 걸려서 찢어진다. 맏딸은 별일 아니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별일이라 한다. 이 대화는 의미가 있다. 큰 딸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엄마에게 전해준다. 엄마와 딸 사이에 전통과 변화에 대한 속마음이 공유되고 있다.


몸집이 큰 둘째 부인이 그려내는 것은 출산과 번성이다. 둘째 딸이 아버지의 신방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둘째 몸집이 커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것이다. 또한 큰 언니의 결혼 상대로 '무니르'가 정해진다, 그 자리에서 둘째 딸은 아버지 술레이만에게 묻는다. "무니르가 자밀의 친구예요 자밀은 뚱뚱해요."



영화 속 숨은 주인공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은 둘째 딸 '타스민'이다. 엄마는 둘째 딸 '타스민'에게 자기의 히잡(머리 덮개)을 벗어서 씌워준다. 딸은 방을 나와서 집게로 빨래걸이에 히잡을 걸어놓고 들로 나간다 히잡은 단순한 머리 덮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화 초반부에서처럼 둘째 딸은 커피통과 설탕 통을 들고 들로 나간다. 커피와 홍차를 위한 설탕은 환대, 전통 등의 의미로 읽힌다.



둘째 딸은 아버지의 둘째 부인을 맞이하는 장면에도, 큰 언니의 결혼 상대자를 결정하는 대화 자리에도, 그리고 큰 언니와 남자 친구의 사귐을 폭로할 때도, 큰 언니의 결혼 장면에도 목격자로 등장한다. 큰 언니의 신방을 들여다보다가 큰 언니와 형부의 대회에도 끼어든다.


영화는 큰 언니와 둘째 동생이 서로를 응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둘째 동생은 어떤 그림 언어일까? 아래의 사진에도 둘째 동생을 묘사하는 그림 언어가 담겨있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천막에서 전통 방식으로 불을 피워 차를 끓여 마시는 그 사이에, 둘째 딸은 공부를 하고 있다.



할머니의 시선, 엄마의 시선, 큰 딸의 시선, 작은 딸의 시선에 영화 속에 어우러진다. 그 시선에 담긴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영화 막바지에 엄마와 딸이 나누는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가 전통에 갇혀 사는 존재로만 알았던 영화 초반의 큰 딸, 그가 이렇게 반응했다. 내 눈은 열려있다고...



영화로 문화 익히기


이집트 영화 속 이집트 아랍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 이스라엘의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아랍어와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남부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의 아랍어이다.



유목민? 이스라엘이 1948년도에 독립할 때부터 그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지역의 아랍 유목민 마을이 무대이다. 유목민? 도시를 멀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생활의 근거지, 주거지를 광야에 두고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유목민은 목축의 유무보다 생활공간이 어디에 있느냐로 구분할 수도 있다. 또한 유목민 출신 집안도 존재한다.


요르단이나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유목민 천막을 치고 광야에 거주하는 유목민이 존재한다. 유목민 천막은 염소털을 주로 사용하여 만든 검은색의 천막을 뜻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역의 유목민은 이런 전통 천막을 사용하는 유목민이 극히 드물다.


©김동문

영화 속에서 이스라엘의 아랍 유목민의 전통 결혼식 진행 과정을 보는 것은 새로운 이해를 안겨준다. 결혼 축하한다면서 축포나 총을 쏘는 것도 전통놀이(?)의 하나였다. 결혼 잔치는 남녀가 같이 모이지 않았다. 남자 하객 따로 여자 하객 따로인 것이다. 신부와 함께 여자 하객들이 따로 오고, 신랑과 같이 남자 하객들이 모이는 장면이 영화에 담겨 있다.


솥뚜껑 위에서 구워내는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얇고 크고 넓적한 밀전병(사즈, Saj),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밀가루로 구운 빵은 그야말로 전통, 양식, 생명을 연결시켜준다. 엄마가 구운 그 빵을 둘째 동생은 큰 언니에게 갖다 준다. 서로가 그 빵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들은 전통이라는 양식(빵)을 만들고 제공하고 나눠 먹으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존재이다. 여자의 몫이 역설적인 것이다.


©김동문


아들 없으면 수치? 둘째 부인은 출산, 다산을 상징하는 그림 언어로 읽을 수 있다. 앞서서 말했듯이 첫째 부인 잘릴라는 딸만 4명을 낳았다. 이른바 대를 잇지 못한 것이다. 대를 잇지 못하는 남자는 그 자체로 남자답지 못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술리만은 남자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을 낳은 남자..


남자다움? 영화 후반부에 라일라의 아버지 술레이만과 어머니 잘릴라가 나누는 대회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라일라를 위해) 좋은 사람을 찾으라... 남자가 돼라."라고. 그런데 술리만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듯하다. 집 안에 있는 방동기조차 수리를 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술리만은, 남존여비 구습과 전통에 맞서지도 전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시 위의 대회로 돌아가서, 술레이만이 화가 나서 잘릴라에게 대꾸한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고?.. 지금 네가 한 짓에 대해 생각해라.. " 그리고 그다음 날 잘릴라의 친정아버지가 찾아와서 잘릴리를 집으로 데려간다. 잘릴리가 술리만에게 수치를 안겨줬다는 것이다. 수치를 당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불명예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양과 염소를 몰고 들로 나가는 장면 등은 아랍 유목 전통문화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에도 후반부에도 둘째 딸은 양 떼 무리 속으로 움직인다.



영화로 아랍어 배우기


마브룩 : 이 영화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표현되는 아랍어가 있다. '마브룩'(مبروك )이다. 때때로 '알프 알프 마브룩'( Alf Alf Mabrook” (ألف ألف مبروك )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복 받았네' 정도의 뜻도 있지만, 물론 우리말의 '축하한다'는 뜻이다. 결혼 축하, 승진 축하, 합격 축하 등의 뜻으로도 당연히 사용된다.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흥정이 끝났을 때도 이 말을 쓴다. '마브룩'이라고 말하지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샀어', '좋은 값이야' 등의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참 위에서 '알프 알프 마브룩'이라는 표현 안에는, '천 번의 천 번만큼 축하한다'는 뜻이다. '알프'( Alf ألف)는 '천'이다.


'마브룩'이라고 말하면, 그에 대한 반응은, '알라(ㅎ) 유바리크 피-ㅋ'(Allah ybarek feek – الله يبارك فيك. ), 알라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이다.



아랍어 언어유희 Word Play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복선이 깔려있다. 일종의 상징인 것이다. 아버지 술레이만(سليمان Sulāymān / Silīmān)은 '평화의 사람', 어머니 '잘릴라'는, '위대한 여자', 큰 딸 '라일라'는 '밤', 그와 결혼하는 '무니(이)르'는 '빛을 비추는 자', 둘째 딸의 이름 '타스민'( تسمين)은 '성취하는 여자' 등이다.



영화 OST


영화의 마지막을 채워주는 음악이 궁금했다. 시나이 반도에서 채집한 전통 노래의 하나인, Sud El Ayun(검은 눈)이라는 노래였다.

https://youtu.be/qbhveWtbmS0?list=RDqbhveWtbmS0

Sud El Ayun (검은 눈)


على العقيق اجتمعنا نحن وسود العيون

ما ظن مجنون ليلى قد جن بعض الجنون

آه يا عيون عيوني ويا جفونه جفوني

ويا قلبيي تصبّر واللي احبهن ذبحوني


작은 시냇가에서 우리는 검은 눈을 가진 이를 만났네.

라일라가 정신 나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조금 정신이 나가버렸어.

아, (그의) 눈은 나의 눈이요, 그의 눈꺼풀은 나의 눈꺼풀이라네

아, 내 마음아 견뎌내라. 참말로 나의 사랑이 나를 죽이네. (*의미를 따라 번역함)


노래 말 가운데 라일라가 나온다. 물론 이 영화 속 주인공 자신은 아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마치 라일라 테마곡처럼 영화를 마무리하고 있다.


해마다 봄철이면 강하고 거센 모래 바람이 불어닥친다. 바람이 강할 때는 움직이는 자동차가 날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 모래 바람은 순식간에 불어온다. 그런데 궁금하다. 영화에서 제목으로 삼은 '샌드 스톰'(모래 바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불어오고 있는 것일까? 지나간 것일까? 아니면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