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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Apr 10. 2022

'지금'을 나만의 그릇에 담아보자.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 자음과 모음


중학생인 아들 녀석의 책을 고르다 보면 늘 추천도서, 연관 도서, 베스트셀러로 계속 내 눈에 띄는 책이 있다. 바로 파란 표지에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단다. 출간 10주년 특별 기념판으로 새롭게 단장해서 나왔다. 10년의 시간 동안 흘러간 지난 시간, 지금 이 시간, 지금까지의 시간이 쌓여 만나게 될 미래의 시간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주었겠다. 10년 전 이 책을 먼저 보았던 그들의 시간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주인공 온조와 그의 친구들의 '지금'을 이룬 시간까지도.



주인공 온조는 객관적 물리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 이름으로 인터넷 카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었다. 의뢰인의 시간을 대신해서 돈을 받고 일을 처리해 준다. 우리가 아는 심부름센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늘 의로운 생각으로 삶을 나누다 죽은 소방관 아빠와의 시간이 온조의 몸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주어진 시간을 누군가를 살리는 일, 위로를 줄 수 있는 일만 맡아서 한다. 같이 성장하는 그런 상점인 것이다. 나의 레이더에 온조의 상점이 걸린다면 나는 어떤 시간을 사고 싶을까? 반드시 풀어야 하지만 손대지 못한 것을 맡기고 싶다.

'시간을 파는 상점'에는 세 가지의 의뢰가 들어온다. 학급에서 도난된 PMP를 원래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것. 할아버지와의 대면하기에 마음이 힘든 손자 강토를 대신해서 할아버지와의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하는 것. 죽음을 앞둔 선생님이 하늘에서 아이들에게 보낼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급을 받은 경험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 만큼 유료다. 그만큼 온조는 의뢰받은 일을 해내기 위해 지혜를 꺼내고, 제때 배달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총력을 다한다.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A/S를 하거나 돈을 돌려주기도 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은 도벽을 낳고, 이런 악순환으로 자살을 생각한 아이는 지금 곁에 친구들이 함께 있어주어 힘을 얻었다. 그 친구는 지금, 자기를 바라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늘 혼자인 혜지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 온조에게 말한다. 지금 이 시간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온조의 엄마는 죽은 아빠와의 지난 시간의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흐릿해진 그 자리에 또 다른 사랑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토 할아버지는 세상의 속도에 쫓아가느라 바쁘게 살았던 시간을 멈추고, 크로노스와 반대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보내는 지금 스스로 시간을 다스리며 산다. 느려도 상관없다. 내 속도에 맞춰서 지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

강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간의 교집합을 만들어 가족이 다시 만나 화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들꽃 자유님은 죽기 전 간절함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도서관 어린이들에게 보낼 편지로 미래의 시간을 만들었다.

이들 모두가 '시간을 파는 상점'을 거쳐간 사람들의 지금의 시간이다. 온조는 상점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시간에 자신이 스며들었고, 그 시간은 앞으로 온조가 시간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는데 변화를 예고한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같이 하겠다는 것. 모든 직원은 무보수라는 것. 상점 운영 전 시급으로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온조가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변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게는 생명과 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시간을 파는 상점> p46 영국의 물리학자 M. 패러데이




첫째에게 카카오톡으로 (확진 격리 중으로)

'시간 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

-. '갑자기? 별생각 안 드는데' 하더니 자기 전 카카오톡이 왔다.

- '시간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시간은 물 같아. 물은 담는 곳에 따라서 모양이 변하고, 시간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서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열이 나므로.)


시간을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을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되도록이면 조금 더 예쁘고 내 마음에 드는 그릇에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그릇에 나눠 담아 타인에게 무심코 건네줄 수 있는 여유도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간이 데려다준 '지금', 미래의 시간을 만들어 줄 '지금' 펼쳐진 것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자.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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