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회사의 끝자락
한 때는 4000명이라는 직원을 가졌던 나의 첫 회사는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4000명이 0명이 되는 과정은 길고도 끔찍하고도 우울했다. 나는 4000명이던 회사가 휘청하고 임직원의 반 정도를 자른 후, 다시 잘해보겠다고 움직일 때쯤 오랜만에 다시 뽑는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를 했었다. 입사 당시 과거 영광의 흔적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느낌이었고, 듣고 싶지 않은데 자꾸 우리 회사가 어떻게 망해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자꾸 해주었다.
다시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이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회사는 사람을 다시 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0-40명 조직에서 2명 정도가 잘렸었다. 처음 잘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업무를 맡은 사람이라던가, 늘 지각을 한 기록이 명확한 그런 사람들이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할당은 쉬지 않고 계속 내려왔고, 아무도 입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누군가가 잘려나가야 하니 점점 더 벽이 좁혀 오는 상황이었다. 막판에 가니 오늘은 너 아니면 내가 잘리는 분위기였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라면서 나와 채팅을 하던 과장님이 실시간으로 팀장님에게 불려 가서 일종의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었다고 통보받았던 기억이 난다. 바로 잘려서 퇴사를 해야 했던 경우도 있고, 과장님 같은 경우는 이상한 팀으로 발령받아서 대리점 영엽을 해야 했었다. 사실상 사무직에게 대리점 영업을 발령 내는 건 그냥 나가라는 일종의 수법이었다. 과장님은 너무 화가 나서 자리에서 키우던 구피 물고기들을 변기에 내려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면서 어항을 그냥 두고 가버리셨다. 그 어항을 내가 거두? 어서 퇴사할 때까지 키웠었다.
어렸던 나는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특히나 미주향 업무를 하는 조직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항상 강제적으로 내 일이 아닌 일까지 항상 끌려가서 영어 번역이나 통역을 해주면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이 나는 이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나와 함께 일하던 과장이 나를 불러내서 네가 구조조정 리스트에 올랐으나 우리 위의 부장님이 말을 잘해서 나를 거기서 빼주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한 그 사람이 참 못됐다. 아마도 그의 의도는 이렇게 까지 해주었니 너는 정말 감사해야 한다 이런 것이었겠지만 난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다시 곱씹어 보면 부장님이 나를 구해? 줬던 이유야말로 본인이 영어를 할 줄 몰라서 내가 없으면 곤란해서였지, 나를 위해서는 절대로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내가? 감히 나를?이라는 생각에 즉시 회사 빌딩 지하에 내려가서 펑펑 울었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렸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회사 동기가 위로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나는 이직을 하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요즘에는 사진을 제출하라는 회사가 신기할 정도로 (특히나 IT 쪽엔) 없으나, 그 당시엔 사진이 필수였던 시절이다.
요즘 들어 그때 생각이 많이 나면서, 역시 회사란 합리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으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느 순간이라도 나의 등에 칼을 꼽을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이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빨리 대처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란 사람은 상처에 약해서 엉엉 울어 재끼는 건 피하지 못하는 것 같으나, 울지언정 대처만 잘하면 다행이지 않나 싶다.
나의 같은 일을 겪어본, 혹은 겪는 중인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공감과 위로를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