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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an 12. 2024

전세사기, 우리 모두에게 집이란?

2. 우리의 신혼집, 그 집 _ 1


나의 첫 신혼집은 1층이었다. 복도식아파트의 1층 맨 끝.

남편과 나는 가지고 있는 돈이 없어 최대한 할 수 있는 비용을 가지고 구할 수밖에 없는 ‘그 집’이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구한 반전세 신혼집.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는 지인들은 나름 거창하게, 전셋집으로 깨끗한 빌라, 번듯한 집으로 들어갔는데,

난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작은 울타리인 거에 감사하며, 결혼 한 달 전 극적으로 우리에게 와준 ‘그 집’에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터라, 결혼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매일 똑같이 일하다가 식장에만 무사히 들어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찰나에

어딘지도 모르는 경기도 그곳에, 어차피 안될 거야 하고, 제일 작은 평수, 제일 저렴한 집에 청약을 넣었는데..


세상에… 당첨이 되고 말았다.


그제야 그 아파트 위치는 어디인지, 우리는 대체 어디에 청약을 넣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어딘지 모르는 그곳에 11층에 당첨된 30평, 우리의 아파트는 2억 초반대였고,

나는 그때부터 우리의 계약금은 어디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머릿속 계산기를 정신없이 굴리고 또 굴렸다.


하필이면 감사하게도 우리의 신혼집의 2년 계약이 끝난 뒤에 그 아파트에 딱 들어갈 수 있다고 했고,

우리의 신혼 계약금으로 그 아파트의 계약금을 낼 수 있겠다는 계산을 끝낼 수 있었다.


신혼집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직장이 없었고,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대표였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급여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신혼집 청소는 우리가 스스로 했다. 며칠을 쓸고 닦았다.

세탁기와 세간 살림은 남편이 쓰던걸 그대로 가지고 왔다. 남편이 살던 작은 집에는 원주인 할아버지할머니가 두고 간 작은 세탁기가 있었다. 그걸 그냥 사용하라고 해서 그걸 가져와 채우고, 밥솥은 엄마가 쓰던걸 가져가라고 했다.

(짧게 말하면 나의 엄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다정한 엄마가 아니었고, 내게 절대 돈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이 불 한 채 두고 살았다. 한 달은 그렇게 살았다.

어차피 우리 집에 올 사람들도 없었고, 나는 그렇게라도 집에서 독립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한 달 후, 나의 신혼집에 새로운 침대가 왔다. 내가 돈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샀다. 그 침대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그 집‘은 우리에게 한 달은 너무 좋았지만, 그 후부터는 끔찍했다.

바퀴벌레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에 살던 세입자가 집을 너무 더럽게 사용해서 바퀴벌레들이 살고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집에 먹을 것을 두지 않고, 무조건 치우고 보이는 틈은 다 막기 시작했다.

그러고 반년의 노력이 지난 후에 바퀴벌레들은 이사를 갔다.


1층의 ‘그 집’은 여름에 너무 끔찍했다.

너무 더웠고, 나는 사람들이 무서워 문을 여는 걸 두려워했고, 문을 열면 밖에서 사람들이 다 보였다.

아 여긴… 일층 복도식 아파트였다. 그걸 이제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그 집’은 여전히 그전 세입자의 흔적이 있었다.

그전 세입자의 압류우편물이 우리에게 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밤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000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 집’의 그분은 이사간지 반년이 넘었어요.


겨울 ’그 집‘의 보일러는 너무 섬세했다.

아주 오래된 보일러 시스템이었는데, 안쪽 작은 드레스룸 아래에 밸브가 있었고, 그 밸브를 열고 닫아야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겨울 첫 달은 이걸 몰라서 도시가스요금이 50만 원이 넘게 나왔다.

13평대 아파트 보일러요금이 50만 원이라니…

우리는 초조해졌고, 결국 남편은 그 보일러를 어르고 달래서 밸브를 만지는 법을 알아냈다.

그 보일러는 너무 섬세해서 아주아주아주 밸브를 정말 아주아주아주 살짝 잠가야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아주아주 밸브를 아주아주아주 섬세하게 만져야 한다.


우리는 ‘그 집’에 익숙해질 때쯤,

유기견 센터에서 몇 년 동안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았던 치와와 ‘모리’를 데리고 왔다.


또 이듬해 우리에게 아기도 찾아왔다.

아기가 백일쯤 되면 새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집 앞에 걸어서 1분 거리에 한강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나는 아이들이 여우 아니냐고 묻곤 했던 ‘모리’를 데리고 한강에 나가 강바람 소리를 듣곤 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는 돈을 계속 모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임신당뇨에 걸려, 임산부 특혜라는 먹을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고,

그저 아주 가끔 감자튀김과 칼국수가 내게 유일한 포식이었다.


아기가 나올 때쯤 새집에 들어가야 하니, 이사비용과 그 외 드는 비용을 위해 더 바짝 아낄 수밖에 없었고,

그저 이 모든 것이 오로지 ‘내 집’ 진짜 ‘내 집’에 들어가면 심리적 안정을 느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던지면서 견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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