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마음이 비처럼 내리는 날

by 권성선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의 색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는 세상은 늘 타인의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분노, 누군가의 외로움, 누군가의 그리움.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색으로 빛나는지는 모른다.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봤다.

엄마가 피곤해 보이면 말을 아꼈고,

선생님이 인상을 찌푸리면 숨을 죽였다.

친구가 울면 함께 우는 대신 가만히 손을 잡아주었고,

누가 소리를 지르면 멀찍이 물러나 조용히 귀를 닫았다.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넌 참 어른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스러움이 아니라, 내 마음을 숨기는 기술이었다.

오늘따라 비가 참 많이도 내린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내 안에 가만히 숨어 있던 감정들을 깨우는 것 같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도 비가 오는 날이 있다는 걸,

왜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도 모를 감정이

내게는 삶 전체를 흔드는 파도가 되기도 한다.

그걸 말하지 못하고, 감추고, 눌러왔다는 걸

이제야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 나는 내 마음 속에 처음으로 말을 건다.

괜찮니?

어디쯤 아팠니?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니?

대답은 없지만, 조용히 내리는 이 비가

어쩌면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사람의 색을 보는 대신,

내 안에 천천히 퍼지는 색을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 이 마음, 나는 파란색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위에 아주 작은 연노랑의 위로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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