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우리에게 레몬을 건네면, 그것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자"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비바람을 만나기 마련. 나에게는 2022년 말이 그랬다. 인생의 세 번째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직한지 세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지난 5년간 매체에서 디지털 콘텐츠 기획, 제작과 광고 운영을 담당했고, 6년 차에 접어들며 커리어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고민 끝에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인 브랜드의 콘텐츠 마케터로 이직했다. 런칭을 준비 중인 브랜드인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도 많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다양한 온, 오프라인 콘텐츠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상상도 해봤다.
그런데 새 회사와 업무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5년 차 스타트업이었던 회사는 얼어붙은 투자 시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브랜드 런칭을 철수했다. 23년 1월 런칭을 목표로 했던 우리 팀은 결국 해체됐다. 뉴스에서만 봤던 권고사직, 정리해고가 이렇게도 순식간에 내 일이 되니 차디찬 얼음물에 몸을 담근 듯 얼떨떨했다.
'불경기와 시장 악화'.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크게 체감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한순간에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22년 끝자락에 '권고사직'이라는 비바람을 마주하게 됐다.
오늘은 그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난 23년 1월의 마지막 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한 달간 고요한 집에 머무르며 많은 생각을 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한 책들을 읽었다. 평일 낮의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집에 있으니 비로소 백수가 된 것이 확 실감 났다.
특히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하면 재밌을까?", "직장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 "퇴사를 당한 건 진짜 유튜브를 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혹시 사업에 소질이 있진 않을까?", "돈 많이 버는 부업 어디 없나?"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줄 알았던 난데, 의외로(?) 치열한 사회 한복판에 다시 나가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것. 회사원 국룰처럼 “퇴사하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지만, 한 달 만에 몸이 슬슬 근지러워진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엔 속으로 "아 출근하고 싶다.." 생각하길래 스스로 병원에 가봐야 하나 싶었다ㅋㅋ)
나의 결격사유가 아닌 회사 경영상의 문제로 인한 일이니 다행히 멘탈은 잘 버텨줬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쉬어서 더 튼튼해진 것 같기도 하다. 주어진 현실 앞에 너무 깊이 좌절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리고 다시 나와 운명이 닿는 회사를 만나 열심히 달릴 그날을 위해 오늘 잠시 멈춰서 신발 끈을 묶는 것이라 생각하련다.
"운명이 우리에게 레몬을 건네면, 그것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이번 경험을 통해 한층 더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내게 건네진 레몬으로 맛있는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비록 유쾌하지 못한 레몬이었지만 계속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고 미뤄왔던 이 글을 쓰며 레몬에이드를 만드는 작은 첫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