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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낮은 건 죄가 아니야, 근데

라스트 손절 스토리

by 유주씨


가장 친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반복되는 기싸움에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경쟁자로 여기는데 겸상을 하는 기분은 참담했다.



친구의 3개월 휴직 기간 동안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다. 그동안 느낀 건, 그녀가 끊임없이 본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깎아내리고 우월감을 느끼면서 가짜 자존감을 채우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압력밥솥의 내솥 코팅을 긁어먹고 새로 샀다, 쌀도 내솥에 씻으면 안 되겠다는 시시한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저 하하 웃고 지나가는 게 아니었다. 자기는 쌀 씻을 때도 따로 씻는 걸 알고 있었다면서, 대놓고 우월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대놓고 그건 가짜 자존감이라고 못 박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났을 때도 끊임없이 날 연필처럼 깎았다. 내가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 대학교라도 졸업해서 다행이었다는 말에는 그건 합리화라고 지적했다. 고급호텔의 경비는 반반 부담하여 온 건데도 불구하고 너 나 아니면 여기 어떻게 오냐는 무시 섞인 말에 내가 아주 몽당연필이 될 지경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직장을 어필하면서 어떻게든 내 입에서 네가 나보다 더 잘났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래, 네가 나보다 낫지 뭐라고 말하자 표정이 더 의기양양해졌다. 남의 한마디에 그렇게 휘둘리는 인생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음에도 계속 자신을 부풀리고 내 위에 서고 싶어 했다.



그날 저녁, 종지부를 찍은 크리티컬한 사건이 있었다. 친구는 술을 마시고는 유부녀면서도 고등학교 남자 동창에게 전화상으로 보고 싶다며 애교를 부리는 추태를 보였다. 집에 두고 온 자식새끼들은 생각도 안 난다는 듯이, 비대한 몸에 아직 자신이 남자에게 어필이 된다는 둥 되지도 않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양심도 없는 사람을 친구라고 내가 주변에 뒀나 싶어, 여행을 마친 뒤 계주였던 내가 곗돈을 나눠주고는 연락을 끊었다. 친구에게 받았던 고급 향수와 화장품도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친구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고 그걸 외부를 향한 자랑과 남의 인정을 통해, 때론 남을 깎아내리며 언발에 오줌 누듯이 채워나가고 있었다. 주변에 있어 가장 큰 가해자면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폭력적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 마인드로 살 건데?



비난당한 것에 화가 나기보다, 이렇게 치졸한 사람이 친구였다는 내 현실에 화가 났다. 앞은 친구의 얄팍한 자존감 싸움에 말린 것뿐이라 쳐도, 뒤는 구린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였다. 이후에 잘잘못에 대해 따져 물었을 때도 “친구는 웃고 떠들면 그만이지, 뭘 따져?”라는 대답이 돌아왔으니, 가식 가득했던 허울만 좋은 관계였던 거다.



변명과 서운하다는 말만 가득한 수십 통의 전화와 메시지에도 더 이상 돌아볼 의미 없이, 17년 된 관계의 카드를 쥐고서 불을 붙였다. 너도 훨훨 날아가길. 아참, 넌 100kg이라 못 날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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