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
며칠 전, 예전 회사 동료들을 다시 만났다. 함께 막창을 구워 먹으면서 내가 퇴사한 후의 이야기와 회사의 근황을 서로 주고받았다. 사실 그동안 뻘짓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며 솔직히 고백했더니 동료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 동료는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ㅇㅇ씨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부럽네.
대부분 가정을 이룬 동료들이라 그런지 매일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전 회사에서 30대 싱글녀인 사람은 나뿐이었고 아이 키우느라,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며 동료들이 하소연하던 게 생각났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 안 한 사람이 부럽다 하고 안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이 부러운 게 세상만사 아니겠는가.
그렇죠.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아플 때 마음껏 아프고 쉴 수 있었던 환경에 감사해요.
누군가는 나의 환경을 부러워하고 또 나는 누군가의 환경을 부러워한다. 이렇게 사람은 못 가진 것에 집착하고 절망하면서 살아갈 때 불행감을 느끼는 것 같다. 특히 나도 직장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고 건강도 무너졌던 시기가 길었으니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컸다. 속으로도 ‘남의 인생은 잘만 풀리는데 왜 내 인생은 이따구일까?’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럴 때 상황을 세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내가 가진 게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돈이나 직장 같은 조건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로 그렇다. 전 지구적으로 살펴보자면 일단 편리하고 발전된 현대사회의 한국에 태어나서 살아온 것.
경쟁에서 뒤처져도 먹고살 수 있는 기본 권리는 보장되는 나라다. 잘나가진 못해도 최저임금이라도 받고 사치만 안 해도 소도시에서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다. 그걸 예전 회사에 다니며 정말 다행이라며 절실하게 실감했다.
또 개인적으로도 들어가 보자. 아직까진 심각한 질병이 발견되지 않은 신체,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의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 크게 눈에 띄지 않게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보통의 외모, 사고 치거나 빚진 거 하나 없이 그나마 상위권인 신용점수, 겨우 얻은 4년제 대학의 학사 졸업장, 조금은 버틸 만한 작고 소중한 통장 잔고.
그리고 누가 봐도 정상 범주에 들 법한 근면 성실하고 건강하신 부모님과 나보다 똑똑하고 열심히 살아온 오빠도 내 옆에 있다. 물론 좋은 친구도. 아마 그 외에도 캐치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검소하게 잡힌 경제관념이나 아플 때도 스스로 버티게 해준 유머감각 같은 소소한 것들 말이다.
이렇게 내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걸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꼈을 때는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다들 잘 다니는 직장을 나는 어려워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나와 다른 고민을 하며 살아가겠지.
그러니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서 있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재미있는 것을 찾아 계속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오직 그것만이 이제부터 내가 할일이란 걸 알겠다.
그동안 회사 동료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랫동안 신경이 너무 예민해서 아프긴 했어도 큰일 없이, 이 정도면 무탈하고 조용히 살았던 내 삶이 감사했다. 요새는 집에서 여전히 못난 자식 포지션으로, 사고는 안 치고 사는 효녀라고 어필하는 개그를 친다. 하지만 전 회사에서의 1년 남짓 한 기간에 내 속은 조금 아물기도, 여물기도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