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이야기 하나.
희상이는 착한 남자애였다.
일곱 살이란 남자와 여자를 의식할 나이가 아니었기에(적어도 그때 나는 그랬다) 나에겐 처음 만난 좋은 친구였다. 한 살을 더 먹고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에게 멀게 느껴진 그 학교 가는 길도 희상이와 함께했다. 포장도 안된 야트막한 야산길을 둘이서 종알거리며 걸어갔다. 오후반인 날엔 학교 가는 중에 오십 원짜리 달고나(우리 동네에선 ‘국자’라고 했다)하는 나를 기다려 주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가방도 희상이가 대신 들고 갔다.
겨우 같은 동갑이었지만 기억해 보면 아빠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희상이를 남자로 여기지 않았다.
희상이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희상이의 가족에 관해 기억나는 건 희상이의 엄마가 우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얼굴의 키가 크신 미인이었다는 것. 어린 맘에도 동네에서 지나가며 보게 되는 보통의 아주머니임에도 긴장이 되는 어려움을 느꼈다.
1학년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희상이와 나는 같이 노는 것이 뜸해졌다. 우리는 각각 학교에서 동성의 친구들이 생겼고 더 이상 동네의 유일한 놀이친구가 될 수 없었다.
집이 늘어나고 동네가 커지고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신설된 국민학교로 함께 전학을 했지만 고학년을 지나는 동안 같은 반을 하지도 않았기에 더욱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희상이의 얼굴은 이제 사춘기 남자아이로 성장해 가는 중이기도 했고, 더 이상 내가 알던 착하고 순박한 얼굴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어른들이 희상이 엄마가 술집을 차렸다는 말.... 그리고 얼마쯤 지나 희상이 엄마가 바람났다는 말... 그리고 희상이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말을 시간차를 두고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착하던 희상이는 이제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내게 낯선 모습으로 지나가는 희상이를 볼 때 한때는 친했던 우리 사이가 실제로 존재하긴 했던 걸까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여중과 여고를 거쳐 서울로 진학하면서 어릴 때를 추억하면 첫 번째 친구였던 희상이 생각이 난다. 내가 서울로 와버린 탓에 그 후로 소식이라곤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쯤 희상이는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희상이는 착한 아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