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이야기 둘.
항상 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눈을 떴을 때,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현실이 아닌 듯한 그런 기시감.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도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체이탈한 나를 바라보듯 멍한 어린 여자아이인 내가 떠오른다.
이런 멍한 상태로 그렇고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나에게, 그런 멍한 내 앞에 본 적이 없는 아이가 나타났다. 1학년 내 반에, 내 앞에 앉아 있었던 남자아이. 1학년이라 회장 같은 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왠지 회장이었을 거 같은 아이. 밝고 쾌활하고 어리지만 자신감은 가득했고... 그래.. 솔직히 너무 잘생긴 아이였다. 겨우 여덟 살인 내 눈에 잘생기고 못생기고 그런 개념이나 있었을까 싶기는 하지만... 아직 동네 동무인 희상이가 남자인 게 나랑 어떻게 다른 건지도 별 생각이 없던 나였으니까.
그 아이는 내 남자 짝과 매우 친했던 거 같다. 쉬는 시간에는 뒤를 돌아 내 짝과 말을 많이 했고 더불어 나도 하하 호호 장단을 맞춘 거 같다. 그냥 유쾌하고 상쾌한 바람 같은, 치약 향이 날 거 같은 아이였다. 겨우 여덟 살에 불과했는데... 브랜드 아동복을 입은 것처럼 그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단정한 옷차림에 학교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어리바리함이라고 없는 어른스러움. 그래서 내가 마치 이 아이를 우리 반 회장처럼 떠올리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울 아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얼굴이 하옜다. 묘하게 입가엔가 까만 점이 있어, 후에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연상되기도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아이가 쌍둥이인지 쌍둥이들인 동생이 있다고 했는지... 그때는 지금처럼 쌍둥이가 많지 않았기에 그를 연상시키는 특별함으로 떠올려지기도 한다.
2학년이 되어, 그 아이와는 다른 반이 되었다. 헤어져서 아쉬운 동성의 친구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와 헤어지게 된 건 매우 섭섭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엄청난 학생수를 기록했던 우리 학교의 복잡한 운동장에서 이제 진짜 회장이 되어 아이들을 인솔하는 늠름한 그 아이의 잘생긴 얼굴이 지나가는 걸 볼 때, 내가 느꼈던 기묘한 그 기분이 이성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추억 속에서 '러브레터'의 소년 남주와 동급의 최고의 이상적인 남자아이로 발전했다. 앞으로 만날 일 없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남자아이가 된 것이다. 입시와 20대를 지나가며, 모든 날들이 새로운 날들이고 순간순간은 치열했기에 이 아이를 더 이상 생각해 볼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도 나도 싸이월드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찾는 것이 유행이 된 시절이 왔다. 더 이상 궁금할 사람도 없던 나에게 문득 이 아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워낙에 독특한 이름을 가진 아이였기에 검색을 해 보니 단 2명만이 후보로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지만 개인 적인 내용의 다이어리에 전체공개로 몇 개의 글을 작성한 덕분에 나는 성장한 그 아이의 얼굴과 현재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유수의 자동차회사의 디자인을 담당한 분이었고 그런 관계로 자동차가 유명한 소도시였던 우리 동네에서 그 아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건지 이 아이도 디자인을 전공하여 영국 명문 디자인 학교를 나와 현재 외국에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멋진 직업인으로 잘 성장한 것 같았다. 음.. 물론 다 자란 성인 남자인 이 아이의 모습은 내가 어릴 적 상상으로 키워 놓은 미소년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싸이월드 엿보기를 하였고(비공개가 아니니 불법은 아니겠지?)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아들까지 있는 어엿한 가장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록 동화 속 귀공자 같던 여덟 살 왕자님의 얼굴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첫 이성?으로 충분히 멋진 아이였고 나는 비록 여덟 살 어리바리 꼬마였지만 그런 멋진 아이를 알아볼 만큼 눈이 있었다 ^^ 혼자 자평하며(물론 현실의 우리는 남이며 그는 나를 기억할 리 없음이지만)이 아이의 추억은 추억 속으로 꼭 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