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이야기 셋.
방학이 좋은 이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교에 가지 않고 어린이 본연의 바이오(?)리듬으로 생활 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예체능 학원만 다니면 좋은 시절이기에 정답 없이 맨땅으로 헤딩해야 하는 탐구생활 작성과 일기장(무려 매일 써야했다), 독후감의 완료가 최고의 스트레스였을뿐, 심심하게 뒹굴거리다 보면 친구가 보고 싶어 개학을 기다리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엄마는 2주이상은 오빠와 나를 차로 두시간 거리의 외가로 보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이지만, 외숙모가 같이 살고 계심에도 너무 당연한양(엄마와 별로 친함이 없었던 외숙모는 감사하게도 우리 남매에게는 관대하셨다)우리는 외가로 떠나곤 했다. 외가에는 이미 반쯤 어른인 중학생부터 성인까지의 사촌들이 많았고 우리 남매는 어디 가나 환영받고 손맛 좋은 외할머니의 집밥을 먹으며 즐겁게 방학을 보내다 엄마가 보고 싶어질쯤 집으로 돌아오는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느 비가 많이 오던 여름...외할머니네 텃밭에 수박 무더기가 발견되었다. 도대체 수박장사는 무슨 사정인지 수박을 할머니 밭에다 다 놓고 사라진 것이다??? 노상 늦잠 자던 때라 이 사건도 비몽사몽간에 들었지만 마을사람들과 논의 끝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수박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기로 결정하고 우리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수박 파티를 벌이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도 수박을 좋아한데다..이 역시 추억속의 사건이라 그런가 내 인생 최고의 꿀수박을 배가 터지게 먹고 또 먹고 있었는데 이틀 뒤 수박 장사가 수소문 끝에 밭의 주인인 우리 외가짓으로 찾아왔다. 법 없이도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순한 성품의 우리 외할머니 부부는 누가 봐도 난감해하는 것이 뻔한 표정으로 "모른다..."고 정답을 외치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대책없이 수박을 거기다 두고 간 수박장사도 이해가 안 갔지만, 수박 장사가 사라질 때까지 나 역시 꽤나 긴장을 타고 있었던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지분의 수박이 내 뱃속에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름의 기억들은 덥지만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면 겨울방학은 추워서 그런지 집콕하며 책읽고 TV 보고 이외의 기억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눈이 오는 것이 사건인 우리 시에 길에 쌓일 정도로 눈이 온 어느 해 겨울, 큰이모네 언니들이 동시에 우리집을 방문해 준 기쁜 추억은 잊혀지질 않는다. 어린 국민학생 여자애들이 그러하듯, 나이 많은 언니들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예쁘고 유쾌한 언니들이 이모(우리 엄마)네를 방문하고 떠나갔을때 외로움에 눈물을 뿌려야했다. 요정같은 언니들이 떠난 내 옆에는 항상 나를 못생겼다고 놀리는 두살 터울의 장난꾸러기 오빠만 있을 뿐이었다. 드물었던 폭설의 이미지와 함께 예쁘고 다정했던 언니의 웃는 얼굴이 아련했었는데...제일 예뻤던 큰이모네 언니는 그만 안개처럼 겨울의 미소를 나에게 남기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큰일이 있을때 그렇듯이 어른들은 어린 나에게는 이 일에 대해 알리지도 설명도 없었다. 믿겨지지 않았다. 원래 몸이 약했다고 했다. 당분간은 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 같았었고, 이 일이 너무 꿈 같아서 내가 다 자라고 나서 엄마에게 내 기억이 맞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 외가의 핏속에 흐르는 담담하고도 유쾌한 성품 속에 다 큰 착한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모는 세월 속에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기에 한 때 나는 내 기억속에 잘못 저장된 사건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작은아씨들'의 베스 같은 언니였다. 국민학교의 겨울방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슬프고 믿기지 않는 기억이 그렇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