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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by 박찬수 Ma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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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 이 영화는 강박증이나,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공감과 위로를 많이 받을 것 같다. 

- 종로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들 


봄, 알바를 가지 않는 토요일 오후, 친구와 종각역에서 만나 시시콜콜한 가십거리의 이야기나 대학, 알바 이야기를 하며 단성사까지 느릿느릿 걸어가서 에비에어터를 보러 가고 싶다.

이 영화는 "충분한 영화" 다.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 그리고 케이트베킨세일, 실화를 다룬 영화.

재미가 없을 리는 만무하고, 엄청난 걸작도 아닌 그럭저럭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깝지 않은 꽤 괜찮은 영화다.

거의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우릴 금방 저녁 술자리로 데려다줄 것이 틀림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종각역의 후아유 골목을 지나 괜스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디 술집을 갈까 기웃 거려 본다.

어차피 강냉이나 오색빛깔 나는 과자를 서비스로 주는 술집에 갈 것이 뻔한 그때였을 것이다.

나무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밥과 술을 한꺼번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술집 말이다.

삽겹 숙주 볶음 같은 것을 시켜 놓고 얇은 삼겹살은 아까워서 먹지를 못하고, 연신 강냉이만 먹으면서 술을 들이켠다. 여기저기 네온사인이 밝아 웃음이 새어 나오는 오후였지만 온갖 세상의 시름은 내가 다 안고 있는 듯이 잿빛 얼굴을 하고는 레오는 왜 오스카상을 아직도 못 받았을까? 하는 건방을 떨어 본다. 영화가 너무 길지 않느냐는 말에 그래도 시간을 보내기엔 아주 "충분한" 영화라고 이야기해 보기도 한다.

우린 왜 매번 지오다노나 KFC에서 만나지만 한 번도 거길 들어가 보질 않았는지, 종로에서 만나면서 종로 빈대떡은 왜 안 먹는지, 종로 금은방은 왜 가볼 일이 없는지, 서로 그냥 입으로 뱉어 낼 수 있는 말들만 계속 떠들어 대며 시간이 저 멀리 가버린다.

이내 더 이상 비울 술잔이 없으면 담배를 한대 피우고는 동네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쉽다. 호주머니도 아쉬운데 이 밤도 아쉽다.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나 사서 홀짝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뱉어 본다. 이제 좀 충분해졌나 보다.

삐뚤 빼뚤 거리며 집으로 향해 본다.

핸드폰을 열어 보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고 삐뚤빼뚤 문장으로 친구가 잘 들어가란 말만 내 핸드폰에 남겨져 있다.

몇 가지로 충분했던 그때,

그리고 요즘, 난 그 에비에이터 같은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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