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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by 박찬수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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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 상실감을 처음 접해 당황하는 사람에게

- 우울감이 당신을 잠식시키기 전에


각본, 제작, 주연배우, 감독을 한 난니모네티의 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당시에 한국에서 처음 개봉 하는 난니모네티 영화라고 홍보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대한 줄거리였고, 그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굉장히 잘 살려 다룬 영화였다.

그 감정이 스크린 밖으로 생생히 느껴졌으니 황금종려상 같은 대단한 상을 탈만한 작품이었다고 어린 나에게도 설득력을 주었던 영화였다.

상실의 아픔을 표현하는 영화는 많다.

같은 상실이라고 할지라도 표현하는 방식을 입체적으로 하고, 궤를 달리 하는 영화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도 그런 측면에서 좋은 영화이다.

영화 "멜랑콜리아" 네이버 영화 스틸영화 "멜랑콜리아" 네이버 영화 스틸

인간의 우울과 상실감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든다.

우울증이 걸린 사람은 오히려 종말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종말에 대한 공포심이 극대화된다는 재미있는 설정도 극의 전개에 따라 매력을 더 한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 도 우울감과 상실감을 현시대의 기술과 잘 접목시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 "그녀" 네이버 스틸영화 "그녀" 네이버 스틸

세상은 IT로 모두를 편리하게 이어 놨지만, 반면에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워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며 세상 그 자체를 상실한 듯한 호아킨 피닉스의 깊은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대부분의 2시간 짜리라고 본다면 한 시간이 조금 넘게 되면 주인공은 무언가 큰 시련에 닥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이 원래 살아왔던 것에서 벗어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진행될 때 관객은 "영화가 재미있다"라고 느낀다.

그 부분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변화들이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것은 "극복"이라고 봐야 한다.

주인공은 다양한 일들을 겪고 극복해 보려 발버둥 친다. 그리고 변화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고는 결말을 향해 뛰어간다.

우리는 그것이 성공을 하던 안 하던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 결말까지 다다르는 주인공을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 "아들의 방"은 아들이 떠나고 남은 빈 방은 어찌 보면 그 부모들에게는 죄책감이고, 상실감 그 자체이며, 지옥인 곳이다.

하지만 난니모네티의 이 영화에서는 감정을 절대로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영화에 쉼표를 계속해서 찍어 내며 관객이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나는 이렇게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어. 이걸 보는 너의 상실감은 어떠한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의 연출이다. 아들을 잃은 아빠가 놀이기구를 타면 기분이 좋아 질까 하여 홀로 놀이기구를 타며 그 아픔을 이겨 내려는 난니모네티의 모습에서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위 나열한 영화들은 상실, 우울, 종말, 고독에 관한 이야기다. 그 감정의 끝은 영화의 결말처럼 반드시 온다고 믿고 싶다.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동기부여가 현실에서는 있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 동굴 속에서 나오는 용기가 인간에게는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울증 환자가 대한민국에 100만 명이 넘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OECD 평균의 두 배이다.

난 우울증의 반 이상은 대부분 화병이라고 생각한다. 다 속으로 삼켜서 생긴 병인 것만 같다.

화병은 주로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정신 의학적 용어로, 억눌린 분노와 스트레스가 오랜 기간 해소되지 않고 쌓여서 신체적·정신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사회가 우울해서 우울증에 걸렸는데 그것 또한 내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노파심이 생긴다.

누구 말처럼 취업이 안되면 취업하게 해달라고 노동부를 박살 내는 해외 사례들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한 없이 내 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다.

신이 세상을 연출하건 말건 사회가 나를 뭐라 하건 말건 1초 뒤를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그러기에 계속 삶을 이어 가도 되지 않을까?

상실과 그리고 우울감을 뒤덮고 있는 나를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슈퍼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눈 감으면 그것은 밤이고, 어둠이다.

내가 눈 뜨면 그게 해가 뜨는 것이고, 하루를 시작하는 씬의 시작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트루먼쇼의 한 장면처럼 조연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엑스트라이다.

내 글을 우울증이나 상실감에 빠진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본다면 꼭 이 문장을 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말이다


꼭 극적이지 않아도 되며, 행복하지도 않아도 되며, 재미가 없어도 되며, 교훈적이지 않아도 되고, 감동을 주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지 않아도 된다.

당신 인생이니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소리쳐도 된다. 모든 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


(꼬옥 안아주며)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소중한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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