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존레논 비긴즈 : 노웨어보이
- 비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멋진 선물 같은 영화
- 나의 우상이자 전설과의 만남
비틀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내 학창 시절은 온통 비틀스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틀스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로 비틀스를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워낙 비틀스에 관련된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많아서 나름 이것 만으로도 실제로 영접하지 못하는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노래 취향부터, 내 인생의 정서를 결정지었던 것은 비틀스를 만나고 난 후였다.
나는 비틀스 노래를 접하고 락이나 포크송, 컨트리송을 듣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다른 많은 좋은 뮤지션과 노래들을 알게 해 준 것이 비틀스다.
그리고 더 파고 들어가 나는 옛날 우리나라 가요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다.
송골매라던가 신중현, 산울림, 들국화, 김현식, 김광석 등 기라성 같은 같은 세대를 아우른 가수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이는 꽤나 어렸기 때문에 이런 가수들을 좋아하고, 듣고 다니면 자연스레 어른들이 너는 어떻게 이런 음악을 아냐고 할 때의 쾌감이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악에 대해서 지적허영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내 고3 담임은 내 진로를 물어보는 면담에서 비틀스 중에서 무슨 곡 좋아하니?라고 물을 정도였다.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영화관에서 보고는 혼자 쿵쾅대던 가슴이 어찌나 뛰던지 꿈에만 그리던 내 몸에 꼭 맞는 수제옷 같은 영화였다고 기억이 된다.
영화 "예스터데이"는 온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비틀스를 모르고 나만 안다면?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유쾌한 영화다. 그리고 존레논 비긴즈는 전설의 탄생을 이야기로 만든 영화라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아.. 존이 저래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 아, 쿼리맨이 저기에 등장하는구나, 폴이랑 저렇게 만나는구나 하면서 그 시절을 엿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비틀스의 역사는 나는 글로 봤기에 이렇게 영상으로 재현해 주는 제작자들이나 감독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틀스 영화를 다룬 영화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자세히 들어 보면 비틀스인 곡들이 꽤 있다.
유명한 영화 중에는 아이 엠 샘이라던가 포레스트 검프, 로얄테넘 바움, 우리나라에서는 비트라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어릴 적에 좋은 음악에서는 좋은 생각이 나고, 좋은 뮤지션을 알게 해 주고, 좋은 영화를 소개해주고 하는 것이 결국에는 나는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읽으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비틀스는 서정적인 노래도 많지만,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도 만들며 적잖은 반항끼가 넘치는 "사람"들이라서 좋아하기도 한다.
"비틀스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라는 그들이 한 말은 워낙 유명하고, 그나마 조용했던 함부르크 시절에는 나체 상태로 공연을 하다 쫓겨나고, 마약은 뭐 원해서 한건 아니라고 하다만, 그 일로 인해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 냈다.
"Let It Be" 앨범을 녹음을 하다가 옥상에서 깜짝 공연을 펼쳐 일대가 마비가 되고, 경찰들이 출동한 일 또한 유명한 일화이다. 그게 그들의 마지막 공연이었다고 한다.
남녀 이야기를 할 때 아름다운 여자, 잘생긴 남자들을 두고는 최상위 포식자는 잘생긴 남자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잘생긴 남자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들 한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그 위의 포식자는 록커라고 하고 싶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런데 연주도 잘하는 사람, 그리고 반항기적인 성격에 남성 페로몬향을 마구 풍기는 매력적인 남자. 록커. 개인적인 의견이다...
비틀스는 평생에 걸쳐 그리운 상대였다. 실제론 볼 수도 없고, 이제 세상에는 완전체도 아닌 폴메카트니와 조지 해리슨 두 명 만이 남아 있다.
마냥 늘 그리워 하지만 너무 먼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존재.
그러다 어느 날 폴이 내게 왔다.
전여친(현 아내)는 무심코 내 책상에 어느 날 폴메카트니 공연 예매 표를 나한테 두고 갔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서 뒤로 나 자빠질 뻔했다.
한국에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티켓팅이 당연히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서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속으로만 우울을 삼키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될 자격이 충분한 그녀다.
현대카드에서 당시 폴 메카트니를 모셔온 비하인드 스토리는 너무 유명하다.
브루노마스를 현대카드가 거절한 사건인데
"슈퍼콘서트에도 영혼이 깃들 필요가 있을 때인데, 브루노는 흥행은 확실하겠지만 아직 젊고 앨범이 몇 장 없어 울림이 작을 것 같다 이 담에 더욱 깊어지면 꼭 초대하려고" 라며 그의 공연을 거절했다.
사람들은 현대카드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비난했지만, 그 이후에 데려온 가수가 폴 메카트니인 것을 보고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폴을 만나러 가는 길
맥주를 한 캔 들이키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주차장 바닥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배우 류승범도 기억이 난다.
나는 그리 가깝지도 멀지 않았던 무대 좌측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폴을 처음 영접 했던 나는 참 기분이 오묘했다. 내가 봤던 폴은 짓궂은 모습과 늘 무대에서 에너지 넘치던 젊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이와 연륜이 묻어 나는 폴의 모습.
뭔가 슬픈 감정과 행복한 감정이 같이 밀려왔다.
비틀스의 노래를 줄기차게 불러 주는 폴을 보면서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술을 조금 마신 나는 공연이 점차 끝나감에 따라 사람들이 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나도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헤이 주드를 외치며 열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그 모습에서 그의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던 폴의 모습,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음악에 미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여서 행복했다.
시키지도 않은 앙코르곡들을 계속 쏟아내는 폴.
그 연륜에도 정열적인 폴을 보며, 나는 결국 "예스터데이"를 들으며 눈물을 쏟아 냈다.
아직도 아내는 이 이야기가 나오면 예스터데이를 들으며 울었다고 엄청 놀려댄다.
난 그럴 때마다 턱을 괴는 포즈를 취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Strawberry Fields Forever" 라든가 심오한 곡에서 울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하곤 한다.
어려서부터 들어서 정말 지겹게 들은 노래지만, 당시에는 예스터데이 바로 첫마디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했던 내 10대 시절 밤에 홀로 공원에 앉아
새벽 두 시에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적막한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눈이 내리던 아무도 없던 화랑대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명동에서도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던 순간에도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도
별을 보며 입김과 함께 한숨을 내 쉬었을 때도
내 귓속엔 비틀스가 흐르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글과 영화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라고 다시금 비틀스 음악을 틀어 보며 꿈꿔 본다.
"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
“결국, 당신이 받는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같다.”
– ‘The End’ 가사, 폴 매카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