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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Kim Feb 22. 2023

경기불황이라는데? 그래도 그만둘래?

너는 퇴사가 하고 싶다..


#2

저는 ENFP 라 별로 계획적인 사람이 못 됩니다. 하지만 이 일(퇴사)에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죠. 말씀드렸죠?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후후

 

퇴사를 스멀스멀 생각하던 시기에 경기불황이라는 말이 무슨 유행어처럼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스몰토크에서도 경기침체가 온대. IMF보다 심할 수도 있대, 물가가 너무 올랐어, 큰일이네.. 같은 대화가 안부인사처럼 오고 갔습니다.


미국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한 연준의 금리인상 결정, 몇 차에 이른 지속적인 금리 인상 발표, 달러 강세, 국내 금리 인상, 부동산 하락, 주식시장 하락.. 국내외적인 경기 침체 신호 속에서 저의 주식 계좌는 마이너스 20% 인지 일 년이 넘었지만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었고, 대출금의 이자는 두 배가 되었지만 그래도 예금 깨서 반이라도 갚고 이자 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추면서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딴 길로 세었다 가자면, '파도타기'는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16년의 회사생활 동안 잦은 조직 개편과 업무 전환을 겪으면서 익힌 나름의 마인드셋 이랄까요?  파도타기를 하듯 몸에 힘을 빼고 흐름을 타야 변화에 적응하고 다음 단계로 다침 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황, 경기 침체의 자동검색어 같은 말이 고용불안일 텐데요. 월급쟁이에게 두려운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이번에는 마음속 품고 있는 사직서가 슬쩍 거두워지진 않았습니다.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끊기면 어떻게 살지, 아이들이 어린데 잘 건사할 수 있을지, 제 욕심만 차리려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면 안 되는데 여전히 걱정이 많습니다. 보통은 이러한 불안감이 일을 멈추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퇴사에 대한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갭이어가 그만큼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얼마 안 남은 회사의 오랜 동료와 대화를 할 때면 곧잘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회사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5년 이상을 대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공무원이나 교직 또는 안정적인 다른 조직은 보다 장기적인 설계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몸담은 회사 동료들에게서는 1년? 3년? 혹은 오늘내일? (왜 이렇게 짧죠?)

꽤 오래전에는 회사에서 임원을 꿈꾸는 사람들을 보기는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승진하고 갑자기 크게 연봉을 띄우진 못해도 해마다 호봉이 조금씩 오르고 쉽진 않겠지만 더 높은 자리도 노려보는 거죠. 시장이 위축되거나 특정 부서의 사업 성과가 크게 떨어질 때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리더를 종종 보았고(대부분 타의로), 2년 계약직인 이사 이상의 임원자리가 풍전등화임을 일찌감치 깨닫고 나니 회사 내에서의 인정욕구나 상승욕구가 사라지더군요.

요즘은 분위기가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잡코리아 광고만 봐도 신입 1년 차부터 시니어, 팀장까지 더 나은 오퍼가 있다면 누구나 이직을 꿈꾸는 사회니까요. 한 회사에서 이직 고민 없이 20년 가까이 다닌 저는 바보이거나 행운아 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저 질문에는 제 대답 역시 '글쎄요. 1년? 정말 길게는 3년 정도 버틸 수는 있겠죠'였습니다. 지난해부터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우울감과 심한 번아웃을 겪으면서 저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달콤한 월급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어찌 저찌 견뎌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견뎌낸 시간 이후에 제가 더 너덜너덜해져 있을 것 같아 이번에야 말로 버티지 않는 용기를 낼 때였습니다.


인생은 길고 회사원으로 3-4년 살고 말게 아니었으니까요.  

회사원이 아닌 나로서 더 긴 세월을 잘 살아내려면 갭이어 말고는 답이 안보였습니다.

이제 트렉에서 내려와 나를 쉬게 해 주고 온전히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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