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수 여름

by 김밍키

별다른 일정이 없던 토요일, 느긋하게 아점을 먹고 청소를 마쳤다. 집안일을 끝낸 뒤 오후 세 시까지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씻고 나온다. 물기 맺힌 머리칼 사이로 반짝이는 눈빛에 꿍꿍이셈이 보인다.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역시나 대뜸 준비하고 나가자고 한다. 어디로 가냐 묻자, 이미 표까지 끊어놨다며 그냥 따라오란다. 경기도가 아니고, 도시의 마스코트가 노란색 캐릭터라고 힌트만 던진다. 그는 자주 이렇게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을 묻지도 않고 진행한다.


다행히 나는 그런 남편의 기습적인 공작에 기꺼이 따라나서는 쪽이지만,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아낸 후 몸을 움직인다. 우리는 그렇게 갑자기 대전으로 향했다.


남편은 원래 뭐든 사전 조사를 하는 꼼꼼한 계획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외향형의 기질이 종종 이렇게 그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주말이면 당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흥분 전달 물질들이 속에서 그득그득 작당을 하는 모양이다.


그의 막무가내식 ‘묻지마 여행’은 성공률이 절반이다. 상의 없이 벌여놓은 일로 싸운 적도 있다. 미리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분명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 행동을, 혼자 계획해 버려 화가 났었다. 깜짝으로 기쁘게 해 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미지수의 일들은 사람을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날씨와 분위기, 그리고 내 기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입추가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인 공기 속에서 기차에 몸을 싣자, 괜스레 없던 고민도 한 줌씩 풀려나가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몽글몽글 구름이 핀 파란 여름하늘에 가을빛이 한 방울 섞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기차 밖 풍경을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애썼다.


지겹게 더웠던 여름이 떠나려는 채비를 하니 갑자기 아쉬워진다. 계절이 그렇듯 인생도 늘 미지수다. 한 치 앞도 온전히 예측할 수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불안이 체질화되어 있진 않았을까. 가끔 이렇게 뜻밖의 순간을 선물처럼 받기도 하는데 말이다.


여름의 뜨거운 심장이 아직 박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 틈새로 어느새 가을의 숨결이 은근히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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