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본 적 없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치고 지겨운 마음에 여름의 절기를 곱씹어보다 어느새 복날도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레면 말복이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잘도 흐른다.
지난주에는 친한 오빠가 집들이를 왔다.
“나중에 너 집들이 가게 되면 갈비찜 해갈게.”
결혼하기 전에 했던 일 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오빠가 먼저 기억하고 말을 꺼냈다.
“내가 약속했던 갈비찜, 네가 부담되지만 않는다면 해갈게.”
니야 완전 땡큐였다. 친정엄마의 요리가 그립듯이 오빠의 요리가 먹고 싶었다. 그는 블루리본 식당의 주방장 급 요리실력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오빠가 이전에 해줬던 알리오올리오와 동파육, 티라미수는 내가 먹어본 것들 중 최고였다. 그렇게 오빠는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우리 집에 왔다. 한 손에는 갈비찜이 든 커다란 락앤락 통이 들려 있다. 요리를 직접 해갖고 집들이를 오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예고된 선물이지만 막상 그 직사각형 통을 받아 드니 안에선 여러 모양의 감동이 밀려온다.
잠시 후 오빠는 가방에서 무언가 다듬다듬 꺼내더니 조그만 쇼핑백을 식탁 위에 올린다.
“작고 반짝이는 거야.”
갈비찜만으로도 충분한데 또 다른 선물까지 준비한 것이다. 액세서리를 포장한 상자 같았다. 곧장 열어보니 정말 반짝이는 게 있었다. 1그램짜리 순금이었다. 놀라서 오빠 얼굴을 쳐다봤다.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말을 골랐다.
“원래 집들이 선물은 순금 주는 거라는데, 아니야?”
솔직히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집들이 선물은 두루마리 휴지가 국룰 아닌가.
며칠 전에는 같이 일했던 회사의 막내한테 연락이 왔었다. 내가 귀여워하고 아끼는 동생이다. 그 동생에게 먼저 카톡이 온 것만으로 기분이 자못 좋아졌다. 근황을 주고받다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눈물 날 것 같아요.”
그 말이 낯설지 않은 감각으로 다가왔다. 한 공간에서 일할 때도 점심시간에 늘 열심히 고갯방아를 찧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화를 내주던,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착하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카카오톡 선물하기 알림이 떴다.
“태교음악으로 들으세요.”
예전에 내가 언젠가 사려고 찜해두었던 엘피판이었다.
잊고 있던 나의 찜 목록을 들어가 스크롤을 내리자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들 옆에 하트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선물로 골랐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신입을 겨우 벗어난 그녀는 여전히 저연차 직장인이다. 선배인 나는 그녀의 봉급이 어느 정도인지 꿰뚫고 있다. 집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아직 대학생인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자신이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는 것까지, 그녀의 호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자기를 위해서 쓰기도 한참 모자랄 텐데 어떻게 매번 가장 좋은 것만 주려고 애를 쓸까.
20대에는 물질을 속물적인 것으로만 여겼다. 누가 얼마를 냈고, 어떤 선물을 가져오는지 따지는 건 품위 없는 일이었다. 가깝고 소중한 사이라면 마음만 전해도 충분하다고 당연하게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불순한 시선을 자책하며 비뚤어진 자세를 의식하고 고쳐 앉는 것처럼 마음도 고쳐 잡으려 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느낀다. 마음이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물질이 따라간다는 것을.
별별 호르몬이 나오는 임산부에게 극비밀리의 새벽은 너무나 취약한 시간대이다. 깨있지 말 걸 후회해 봤자 별 수 없다. 내 안의 누군갈 가여이 여기는 마음들이 샘솟는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자기 연민에 잘 빠진다. 때론 그 연민이 자기혐오까지 번진다는 점에서 타인에게 향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그 깊은 수렁에 또 빠진다.
여러 가지 모양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기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주고 싶은 게 많은데,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내 마음은 그저 마음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무너졌던 마음은 금세 진한 국물처럼 천천히 데워졌다. 지쳐 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금 기운을 차리게 했다. 계속 이렇게 무력하게 있을 게 아니라 생산적인 무언갈 해서 뭐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않을까. 마음의 원기 회복을 경험했다.
올여름은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복달임을 받아먹고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정성, 뜻밖의 선물,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해 준 마음들. 물질로 표현된 금쪽같은 애정을 한 숟갈씩 떠먹으며 이 여름이 살아지고 있다.
서로를 향하는 사람의 마음은 지쳐있는 한철을 회복하게 해주는 제철 음식이었다. 지금까지 이보다 근사한 복달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