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열대야

by 김밍키

호르몬의 영향인지, 낮 동안 별다른 활동을 안 해서 밤낮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건지 요즘 밤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자리에 누워 몇 시간은 뒤척여야 잠이 든다. 열대야도 한몫하는 것 같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들면 전기세와 감기가 걱정된다. 그래서 애꿎은 선풍기 각도만 과격하게 이리저리 조절하고 세기를 올린다.


하지만 머리만 갖다 대면 잘 자는 남편은 드르렁 코를 골며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남편은 잠꼬대를 많이 한다. 진지하게 걱정될 정도로 자주. 이날도 갑자기 코골이를 멈추고 또 중얼중얼 뭔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진짜 귀엽고 이쁘다… 민경이…”

잠꼬대를 감탄하듯이 내뱉을 수 있다니. 분명 가락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벌쭉 웃음이 났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내 손가락은 녹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다시 잠의 심연으로 빠졌다.


사랑의 확실한 증거라도 발견한 것처럼 급격히 기분이좋아졌다. 내가 평소에 너무 “이쁘다”라는 대답을 강요해 왔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훈련된 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훈련된 말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말 그대로 잠꼬대 같은 헛소리였다고 해도, 나는 그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사랑 고백 덕분에 하루 종일 행복했다. 괜히 혼자 웃음이 나고, 괜히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말 한마디가 많은 것을 이렇게 바꿔놓는다.


혹여나 “민경이 그렇게 이쁘진 않아”라든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칭찬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남편은 가슴이 철렁하는 눈치다.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조금 두렵기도 한가 보다. 다음날 밤 잠들기 전 자기의 무의식을 조종하듯이 “민경이 이쁘다”를 몇 번 되뇌고 자는 모습은 코미디다.


사랑은 때로 아주 깊은 잠 중에도 흘러나온다.

한여름의 잠꼬대 같은 고백에 열대야 속에서도 마음이 연방 말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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