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아침 알람은 매미소리다. 잠귀가 침침한데도 그 작열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눈이 떠진다.
이번 여름에는 맴맴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이 지역에는 참매미 대신 말매미나 다른 종이 많은 탓일 것이다. 매년 진짜 여름을 알리는 맴맴 소리가 반갑고 정겨웠었는데 지금은 수천 마리의 매미가 햇빛에 달궈져 지글지글 타 죽는 장면만 악랄히 펼쳐진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가열될 대로 가열되어 내는 저 애고로운 신음을 누가 언제부터 매미들의 합창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했을까. 이건 한낱 곤충들의 절규일 뿐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뜨겁다. 여름이 무언가를 태워 없애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임신 13주차.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저녁이면 남편이 퇴근한 뒤 같이 밥을 먹고 의무처럼 산책에 나선다. 식사를 마쳐도 더위가 무서워 일부러 해가 완전히 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을 나서지만, 유례없는 열대야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한 시간을 걷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땀에 젖은 모자를 벗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힘들어.”
고작 이거 걷고 파김치가 된 내 체력을 생각하며 잠시 멍해졌다. 다른 산모들은 입덧을 하고 뒤죽박죽 호르몬 변화를 겪으면서도 만삭까지 회사에 다니고 제 몫의 경제활동을 한다. 하지만 나는 뭐람. 입덧은 처음부터 없었다. 속이 메슥거리거나 냄새에 예민해지는 일도 없이, 내 몸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하다. 나도 나 같은 산모를 듣도 보도 못했다. 다들 축복받았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깊고 끈적하다. 나는 여전히 멀쩡한 사람인데, 어디 가면 인정도 받을 수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는 죄책감이 자꾸 들이친다.
당분간만 보류되는 문제도 아니다. 출산을 한 이후까지 추산하자면 나는 지금부터 꽤 오래도록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근무를 하다가 임신을 한 게 아니라, 입사부터 임산부인 사람을 맞아줄 곳은 없었다. 몇몇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 임산부지만 내 열정이 가려지지 않길 원한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자기소개서는 모두 객설이 되었다. 이렇게 서류부터 거푸 까인 적은 없었는데.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열정이나 진심만으론 될 게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렇게 계속 집에만 있으니 몸도 정신도 점점 늘어진다. 낮잠을 자도 피곤하고 가만히 있어도 무기력하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덥고 무섭다. 내 안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는 건, 내가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조심조심 사리는 것도 있다. 하지만 당연한 현상들에도 나는 자꾸만 예전의 나와 지금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긴다.
이제는 극초반의 더부룩함조차 사라지고, 소화도 너무 잘 된다. 그래서 하루에 다섯 끼는 먹는다. 그런데 체중은 늘지 않고 오히려 빠졌다. 진료를 받을 때마다 의사는 아이가 주수에 맞게, 아주 잘 크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줄어든 건 내 몫의 무게구나. 아이를 품는다는 건, 그렇게 나를 조금씩 덜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용히 아무 증상도 없이 내 질량이 줄고 있다. 그렇게 나를 야금야금 덜어내고 있다.
요 며칠은 매미 소리가 꾀까다로이 크게 들린다. 아침에도 해 질 녘에도, 어떤 때는 한밤중까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몸이 어떠냐는 안부에 아무렇지 않다고, 임신체질인 것 같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절규하기도 한다. 내 올여름은 가열될 대로 가열되어 결국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 소리로 기억될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매미의 발악은 내가 버티고 있는 여름의 언어이다.
그렇게 고상히 맴맴 울기도, 떠들썩하게 지르르대기도 하며 오늘의 삶을 변주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