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by 김밍키

날씨가 그동안의 사나웠던 더위가 미안했는지, 사람들에게 잠깐 쉴 틈을 주려는 듯했던 지난 주말. 오랜만에 공기가 선선했다.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던 뜨거운 열기 대신, 바람이 팔목에 스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에어컨도 평소보다 약하게 틀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건 감사 같은 게 아니라 불만이었다. “날씨 변덕 왜 이래”. 여름이 갑자기 여름 같지가 않으면 또 그것대로 지구가 어디 많이 아픈 건지 의심스럽다. 더워도 걱정이고, 덥지 않아도 걱정인 나라는 걱정인형. 걱정도 습관인 것 같다. 간발이라도 이런 기온을 누릴 수 있는 건 분명 축복일 텐데 말이다. 지금 이곳을 낙원으로 여기기로 마음을 바꿔본다.


주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옆에 선 남편의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와, 만삭처럼 불룩하게 나온 배가 눈에 들어온다. 임신은 내가 했는데. 순간 마음속 이야기가 입술을 타고 새어 나왔다.


“와꾸가 진짜 중요한가 봐.”


단정하지 못한 겉모습을 보며 얼마간 기분이 언짢아졌다. 외모 하나로도 이렇게 감정이 올라올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정제되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뭐? 와꾸????“


남편이 펄쩍 뛰며 반문한다. 이마에 힘주어 뜬 작은 눈은 더 동그래졌다. 입모양도 동그랗다. 며칠 전 본 디즈니 영화의 ‘우우우’라는 캐릭터를 닮았다.


“나 교회 안 가. 나 진짜 안 가.”


삐친 기색이 역력했고 잠시 난동이 있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고,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싸우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교회 앞에서 티격태격 작은 소동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소동의 대부분은 나의 나쁜 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교회 가기 직전 입술에 사탄이 들린다.


담임목사님이 안식월을 지내고 계셔서, 이날은 부목사님이 대예배 설교를 하셨다.

이곳에서 사역하신 지 15년이 되었다고 한다. 각 교회의 담임목사 특성과 방침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부교역자는 짧게 짧게 거처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한 교회에서 이렇게 오래 계신 부목사님은 처음 뵌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말씀이었다. 조금 전의 일들이 떠오르는, 내게 당장 적용하기에 알맞은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 대한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그들은 단 한 가지 허락하지 않으신 선악과에 집중한다. 그 딱 하나의 불만족은 다신 돌이킬 수 없는, 인간 최초의 죄악이 되었다.


하나님이 귀하게 만드신 남편의 많은 장점들을 알고 있지만, 너무도 쉽게 단점 하나에 꽂혔고, 그를 말로 찌르고 말았다. 이미 가진 복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단 하나가 못마땅해 나머지의 모든 사랑을 가려버렸다.


예배를 마치고 이발을 하러 갔다. 눈썹이 보이게 앞머리를 짧게 자르니 인물이 훤해졌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고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잘생겼는데?”

그는 웃었고, 나도 웃었다.


바깥에 나오니 여전히 햇살이 부드럽다. 하늘을 바라보며 외모 탓했던 나를 뉘우쳤다. 토라졌어도 금세 마음 푸는 그의 순한 성품이 햇살처럼 고마웠다. 사랑은 눈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초점에 따라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조금 더 따뜻하게 초점을 맞춰 남편을 봐줘야지.


내가 받은 에덴동산을 생각해 본다.

살이 점점 빠진다며 바로 나를 태우고 맛의 고장으로 향하는 운전대, 늘 가득 채워놓는 간식창고, 종류별로 씻고 깎아 정성껏 내어주는 과일상, 퇴근하자마자 차려주는 김치찜.

같이 잘 먹고, 같이 웃고, 같이 행복했다.

남편이 살이 더 찐 건 체질 탓일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걸,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집이 에덴동산이었던 것을.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자꾸 선악과에 시선을 두게 된다. 이제는, 조금 더 자주 고개를 돌려 내게 허락된 낙원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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