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만의 폭염이 찾아왔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기온을 측정한 이래 가장 뜨거웠던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선조는 이런 날씨를 겪어본 적 없고,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가마솥 더위의 선구자쯤 된 것이다. 요즘 보면 아름다운 사계절이 아니라 힘겨운 이 계절만 남은 것 같다.
40도를 육박하는 극악무도한 폭염이 도래한 날, 하필 약속이 있었다. 나는 이미 잡힌 약속을 미룰 때, 연락하고 사과하고 다시 잡는 데까지의 체력 소모가 너무 크고 피곤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웬만한 천재지변 아니면 약속 변경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생겼다. 그래서 나가기 귀찮았던 찰나에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깨 주면 고맙다. 이미 집을 나선 상태만 아니라면.
이러한 이유로 기상청이 미리 경고를 했고 주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서울 만남을 강행했다. 하지만 금사이 깨닫는다. 난 그저 겁을 상실한 뚜벅이 임산부였다는 것을. 이날의 기온은 거의 천재지변에 가까웠다는 것을. 햇빛이 너무 강해 공중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내 정신이 아득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원래도 날씨 변화에 약한 편이었지만, 임신 후로는 모든 감각이 조금씩 더 예민해졌다. 특히 기초체온이 올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짧은 걸음에도 숨이 차고, 그늘 아래서도, 손선풍기를 아무리 코앞에 갖다 대도 더위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이것들이 어떠한 효용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힘든 여름을 보낸 적이 있던가. 마치 매일매일 새로운 여름을 건너는 기분이다.
나는 점점 느려졌고, 지쳐갔다.
요 며칠 친구들을 연속으로 만나며 대차게 무리한 후로 앞으로 약속은 최소한으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수다를 나누고 왔다고 해도 돌아오는 길엔 좀 전의 내가 아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웃음기 확 사라진, 미간에 험하게 주름까지 잡힌 사람이 있다. 누가 건들면 짜증이 날 것 같다. 이건 아니다. 내가 아닌 아기를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쉬리라 생각했다.
며칠 전엔 교회 예배 중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사방이 막힌 실내, 빵빵한 스피커 소리 때문일까.
앞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 시선도 의식됐다.
그럼에도 예배 중간에 정말 뛰쳐나가고 싶었다.
숨이 막히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입덧하는 임산부들은 이런 기분을 매일 느끼며 사는 건가. 그녀들이 가여워졌다. 기도 시간에는 안에서 기도를 한 건지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입맛도 조금은 달라졌다.
좋아하던 콩국수가 요즘은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여름이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연달아 콩국수를 먹을 만큼 콩국수 귀신이었는데 말이다. 오래전 같이 일했던 실장님은 여전히 여름마다, 메뉴를 정할 때 내 생각이 난다고 하신다. 오늘은 뭐 먹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매일같이 ‘콩국수’라고 답했었기 때문이다. 여름 점심시간이 되면 그 단어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이제는 콩의 고소한 맛이 당기지 않는다.
새롭게 친해진 것도 있다. 바로 신비복숭아이다. 냉장고에서 미리 신비복숭아를 꺼내 실온에 둔다. 어렸을 때부터 이가 시려서 찬 음식을 잘 못 먹기도 하고, 과일은 따뜻하게 먹어야 단맛이 더 돈다.
신비복숭아는 일반 복숭아처럼 딱딱하지도, 물러터지지도 않은 적당한 식감을 자랑한다. 그래서 ‘신비’ 복숭아인가. 보송한 털도 거의 없어, 가볍게 씻기만 해서 먹기 좋다. 이 알맞추 무른 느낌 덕분에 몇 년 전부터 여름마다 큰 사랑을 받는다. 한입 베어 물자, 과육이 터지듯 입안에 달콤한 물이 번졌다. 과즙이 턱을 흘러내리다가 턱끝에서 맺힌다. 손가락 마디 구석구석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추잡스러워진다.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고, 손끝에서 미끄러진다. 이런 구성진 과일을 전에는 안 먹고 살았다.
지친 몸에 작은 기운이 돌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이 다시금 또렷해졌다. 그 복숭아 한입 덕에, 나는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건 이런저런 사소한 것에도 쉽게 시달리는 나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나의 일부가 자라고 있다. 태아만 자라는 게 아니라, 엄마로 살아갈 내 마음도, 내 감각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힘들지만, 이 시간을 겪고 있는 나 역시 성장하는 중이다.
태아는 이제 팔다리를 갖췄다. 뼈와 근육이 자리를 잡으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아이는 단단해지고 있다. 더위와 피로 속에서도 생명의 시간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지치고, 느려지고, 영양분까지 뺏기면서도 내 좋은 건 다 가져갔으면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든다.
여름이 깊어간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또 하나의 계절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