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약속이 끝난 저녁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수원역으로 데리러 와줬고, 우리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가도로 위였다. 차량 한 대가 도로 구석빼기의 작은 공간에 멈춰 있었다.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었고, 주황색 탄성분리봉 몇 개가 힘없이 지르밟인 채였다. 그 자리는, 차가 잠시 정차할 곳이 아니었다. 벽에 부딪힌 흔적은 없었고, 차체도 멀쩡해 보였다.
뭐지 싶어 운전석을 확인하려 했지만 내부는 짙은 선팅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왠지 운전대를 안은 상태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형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운전자가 의식을 잃은 건 아닐까. 아무도 못 본 채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며칠 전 뇌경색 진단을 받은 엄마가 떠올랐다. 운전자에게 뇌혈관이나 심혈관 문제가 갑작스럽게 온 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선, 저 자리에 차가 멈춰 있을 이유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졸려서 갓길에 잠시 쉬어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차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신고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전화 공포가 있는 나는, 늘 그 마지막 동작 앞에서 멈칫거린다. 대신 남편에게 말했다.
“신고 좀 해줘.”
하지만 남편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머뭇거린다. “나 112에 전화해 본 적 없는데… 오지랖 아니야?” 그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사실 나도 내 판단에 확신이 없었다. 정말 괜한 오지랖인가. 비슷한 생각을 한 다른 목격자가 신고를 이미 하진 않았을까. 꼭 우리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망설임 속에서 한참을 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길게 느껴졌다. 정말 위급상황이라면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됐다.
또 이렇게 찝찝한 상태로 지나쳐버린다면 나는 두고두고 자책하며 오래 후회할 것을 안다. 남편에게 한 번 더 부탁을 했고, 결국 남편이 전화를 걸었다. 위치와 상황을 설명했다.
그사이 우리는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그 길로 돌아갔다.
그런데, 차가 없어져 있었다. 운전자가 의식을 차리고 떠난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때 경찰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된 장소에 왔는데, 말씀하신 차량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도 신경이 쓰여 지금 다시 와봤는데 없어졌어요. 혹시 몰라서 신고했던 건데 괜찮아져서 이동을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잠시 뒤 구급대원의 휴대폰으로 같은 전화가 왔고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그들은 한 번 더 주변을 돌아본 후 철수를 하겠다고 했다. 차 안에 누가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아 역시 오지랖 부린 거 아냐? 전화 한 통에 경찰차 구급차 다 출동했는데, 아무 일 없어서 우리 때문에 인력 낭비한 거 아닌가 몰라.”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 내가 헛방을 친 걸까. 그저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차를 봤고, 망설였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 뿐이었다.
남편의 용기를 고무하며 말했다. “아니야, 잘한 일 맞아. 정말 멋있었어.”
우리는 망설였지만 끝내 지나치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대도 그것은 쓸데없는 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시간을 돌이킨다면 더 빨리 행동할 것이다. 다른 이의 위험을 감지했을 때 날림으로 대하지 않고 걱정해 주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이 강퍅한 세상살이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힘 아닐까.
해는 이미 졌지만, 공기는 무거웠고, 마음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다. 여름은 그런 계절 같다. 쉽게 지나가지 않고, 어떤 장면을 오래도록 붙들어맨다.
마음을 놓고 난 밤, 우리는 오손도손 앉아 선풍기를 틀어놓고 달곰한 신비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여름의 한 자락을 건너고 있다.
조금은 오지랖을 부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