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퇴원한 건 토요일 아침이었다.
처음엔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당분간은 병실에 계시겠구나 싶었다. 뇌경색이 온 당일까지 드럼 연습을 했건만 안타깝게도 공연은 물 건너갔구나 예상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병세가 경미해서 퇴원 날짜가 빠르게 잡혔고, 응급실로 향하던 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 불과 사흘 만에 눈앞에 펼쳐졌다.
예정되어 있던 드럼 공연 무대 위에 오른 것이다.
엄마는 언제 팔다리가 안 움직였냐는 듯 신나는 리듬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가 지금은 박자 위에 앉아 있다. 거짓말처럼 돌아온 모습이었다. 악기소리보다 더 또렷했던 건, 잠깐 좌절했다가 다시 되찾은 무대에 서게 된 엄마의 표정이었다. 기쁨만 선명했다.
그 주말부터 엄마는 일을 잠시 쉬었다. 원래의 휴무를 빼면 하루이틀이었지만, 잠깐이라도 숨을 고를 시간이 주어졌다. 그 며칠은 엄마의 친구들이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만들어 준 듯했다. 일명 ‘뇌경색 퇴원 축하파티’가 이틀에 걸쳐 열렸다.
하루는 경기도 근교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 놀고, 또 하루는 소수의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서 카톡으로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첫 번째 사진엔 파란 여름 하늘과 속초 바다가 통창 가득 담겨 있었다. 햇빛을 머금은 수평선이 유리창을 통해 식당 안으로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은 대게와 회 세트가 가득 차려진 식탁이었다. 붉은 껍질과 투명한 살점을 보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말 없이 보낸 그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엄마가 친구들과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기운을 되찾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식사에 커피, 작은 선물까지, 그날 하루는 한 친구의 남편이 전부 계산하셨다고 한다. 퇴원을 축하한다며 통 큰 한턱을 시원스럽게 내신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고 내 마음까지 선선해졌다.
엄마는 예전에 한번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OO이 남편이 그러더라?
자기 와이프 매일 이렇게 즐겁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엄마한테 자기 퇴직금 반쯤은 줘야겠다고. 하여간 웃기지?”
재밌다며 넘긴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누군가를 오래 아껴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끼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마음을 쏟게 된다. 그 친구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엄마의 친구가 우리 엄마를 얼마나 애중히 아끼는지가 다 느껴졌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웃음이 되어주는 사람.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의 고마움이 따라오는 사람.
뭔가 더 줄 게 없어 자신의 재산까지 주고 싶어 할 만큼.
같은 날 나는 친구와 서울 나들이를 갔었다.
다 놀고 헤어지려 하는데 갑자기 무심스럽게 “임신 축하 선물” 하면서 봉투 하나를 내민다. 신세계 상품권 한 장과, 짧은 축하 메시지가 적힌 카드가 함께 들어 있었다. 종이 한 장, 카드 몇 줄이 그 순간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런 것까지 엄마를 닮아 나도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걸까.
장마가 흐지부지 지나가고, 드디어 ‘진짜 여름’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긴 폭염의 출발점이다. 햇빛은 어제보다 더 뜨거워졌고, 양산 아래 그늘마저 숨이 찰 만큼 습도도 쑥 올라 있다.
이맘때의 더위는 몸도 마음도 금방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열기 속에서 오히려 사람들의 안부와 기척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퇴원 축하, 임신 축하 등 별걸로도 다 이름을 붙여 축하를 하는, 착한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갑자기 이 계절이 신나는 파티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