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본가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가게 되는 것 같다. 같은 경기도라 해도, 차로 편도 한 시간 넘는 거리는 생각보다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기름값이든 시간이든 여유는 늘 빠듯했다. 그래서 무언가 행사라도 있어야 핑계 삼아 다녀오곤 했다.
이번 주말, 의정부에 가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엄마의 드럼 공연이었다. 엄마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벌써 2년쯤 됐고, 다니는 학원에서 몇몇 회원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실력이 제일 좋아서, 마치 음악 방송의 인기 아이돌처럼 맨마지막 순서로 무대를 장식하기로 했다 한다.
곡은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
빰빠밤빠밤빠바밤 박자에 맞추듯 엄마는 이 곡을 고른 이유를 신나게 설명했다. 드럼으로 연주하면 얼마나 멋지고 흥이 나는지 모른다며, 몇 번이고 흐뭇하게 상기된 얼굴로 곡 선정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연습 영상을 미리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본 무대에서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꾹 참았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북을 두드릴 엄마의 모습을 기대하며 공연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타악기 위에서 펄펄 날아오르 듯하던 엄마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잠이 안 와 어두움 속에서 핸드폰 불빛을 들여다보며 뒤치락거리고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나, 자?”
바로 안 잔다고 칼답을 하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꽤나 급한 용건이 있어서 이 시간에 연락한 것 같은데 궁금하게 이 녀석은 바로 대답을 안 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직감이 스쳤다. 동생이 어떤 사고를 쳤다거나 하는 종류의 상상이 펼쳐졌다. 불안해서 다시 한번 카톡을 보냈다. “와이”
몇 분 후 메시지 대신 전화가 온다.
“엄마 응급실 왔어. 한쪽 팔다리가 아예 안 움직인대서. 쓰러진 건 아니고 손빨래하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그런 거라 뇌출혈은 아닌 것 같고, 뇌경색이나 뇌졸중으로 보인대. 처음보단 지금 움직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엄마는 정밀 검사받으러 들어갔어.”
울음을 참고 있는지 한 글자씩 천천히 말하는 동생의 음성을 나도 느리게 따라 들었다. 머릿속에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 것 같이 멍했다. 영원히 강철체력으로 나를 지켜줄 것 같던 엄마의 첫 응급실이었다. 이제 남의나이 먹어가고, 한두 군데씩 고장 나는 데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안 좋았던 엄마의 건강 문제를 막상 마주하니 바로 믿기가 힘들었다. 나는 엄마가 나보다 오래 살길 바라던 이기적이고 불효막심한 자식이다. 나는 너무 나약한 인간이라 엄마 없는 삶을 상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아닌 밤중에 깨우게 돼 미안했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두 시간 정도 후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뇌경색이래. 다행히 경증이라 주사도 안 맞고 아스피린만 먹었어. 일주일 입원하래.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본 케이스 중 손에 꼽을 만큼 빨리 발견한 거라고 하셨어.”
분초를 다투기도 한다는 초미의 뇌혈관 질환을 빨리 알게 된 건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리 아프고 이상이 있대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 엄마라서 더 안도감이 든다. 이것도 괜찮아질 거라 넘겨짚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끔찍하다. 하지만 안도감이 들면서도 마음속엔 엄마의 공연이 자꾸 무뜩무뜩 떠오른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얼마나 마음이 속상할까 그게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근무를 할 때가 아니면 엄마는 늘 전화할 때마다 학원에 있었다. 그야말로 연습 삼매경이었다. 서늘한 계절부터 시작된 연습이었다. 그 날씨에 엄마는 숨이 차는 목소리로 등이 땀으로 젖었다고 말한다. 상쾌한 땀방울이 맺혔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엄마의 열정은 내 청춘보다 훨씬 뜨겁다. 최근에 일손이 부족해져서 일하는 시간이 더 늘고, 힘들다면서도 연습은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하는 엄마를 보면서 존경스러웠다.
평균적인 근로 시간보다 오래 일하는 것 같은 엄마는 집안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하기도 어렵고 대단하다고 치는데 엄마는 모두 해낸다. 심지어 취미생활과 운동, 독서 등 자기 관리까지 한다. 몸이 몇 개인지 옆에서 보면서도 신기하고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고교 동창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쉬는 날엔 친구들 만나기도 바쁘다. 시간을 그만큼이나 허투루 쓰는 일이 없어서인지 엄마는 모든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눕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 쪼개가며 열성으로 준비해 온 공연인 걸 알기에 마음이 안 좋다. 역시나 그 사실을 아는 동생도 같은 생각인지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인다.
“엄마 드럼 못 가게 생겼네. 서럽겠다 엄마….”
엄마가 선택한 곡, ‘아름다운 강산’. 그 노래처럼, 엄마의 삶도 언제나 굳세고 아름다웠다.
무대 위에 서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의 연주를 들어왔다. 주방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자리에서 엄마는 삶의 북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두드려왔다.
환갑에 뇌경색은 이른 편이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달려온 탓에 병이 서둘러 문을 두들긴 것이다. 아름다운 강산보다 멋진 엄마가 이제는 삶의 드럼스틱을 예전처럼 힘차게 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엄마가 새벽에 못 잔 잠을 털고 일어나면, 일 좀 줄이라고 다그치기보단, 그토록 열심히 연습했던 그 영상을 보여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