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똘기

by 김밍키

여행에서의 일들을 가만히 되짚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잦고도 독했던 방귀다. 시드니의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경적 소리에 실어 조심스레 흘려보내려 해도, 냄새가 바람을 타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창피했다. 괜히 한국인 먹칠을 하고 온 건 아닌가 싶다.


그 뒤로는 참고 또 참았다. 혼자 있을 때만 조심조심 내보냈다. 처음엔 요즘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방귀도 몸의 변화를 알려주는 신호였던 것 같다.


입덧도, 먹덧도 없다. 호르몬 변화가 극심할 때라는데 아직까지 없는 것 보면 그냥 이대로 임신 기간이 잘 지나갈 것 같다. 대부분의 임신부가 입덧을 한다는데 그에 비해 내 안은 고요하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소화가 너무 안 되고, 유난히 가스가 많이 찬다. 살아온 날들 중 가장 배가 불룩하다. 1cm도 안 되는 태아 때문은 아닐 테고, 분명 내 배인데도 말이다. 아기가 아니라 독가스와 지방으로 배가 부풀고 있다.


소화가 안 되니 밥을 먹고 싶지 않아진다. 식사량이 줄어들어 오히려 체중은 빠졌다. 자연스럽게 기운도 없다. 입덧도 안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데도 이렇게 잔피한데,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어쨌으려나 싶다. 또 어떻게든 버텨냈으려나, 아니면 중간에 그만뒀으려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답답한 속과 이유 없는 무력감으로 요즘 나는, 건달 생활의 일인자다. 빈둥빈둥 있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배고프면 밥 먹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준비했던 일들이 최근에 한꺼번에 끝나서 목표의식이 사라진 탓도 있다. ‘이것만 빨리 끝내고 얼른 책을 마음껏 읽을 거야’ 큰소리쳤던 독서 열기는 어디론가 쏙 들어갔다.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 책 읽는 시간이 뒤널렸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그렇게 뒹굴뒹굴하다 보면 금세 남편 퇴근시간이다. 임신한 이후 계속해서 처지는 나를 대신해 남편은 더욱 부지런히 움직인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가방만 풀고 바로 부엌행이다. 입맛이 없어도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먹고 싶은 걸 묻는다.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나열하지만, 그중 당기는 게 없다. 그럼 남편은 알아서 무언갈 만들거나 식당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브로콜리, 시금치, 참외, 토마토 등등 임산부에게 좋다는 것도 대령한다. 그의 애쓰는 모습이 눈물겹다.


주일 예배 기도 시간이었다. 눈을 감으니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가 측은했다. 저 대신 하나님이 남편을 책임져 주세요 라는 기도가 나오면서 뺨이 젖었다. 예배가 끝나고 왜 울었냐 해서 이유를 말했다. 그는 “그렇게 썩 힘들진 않는데” 하며 웃는다.


채 익지 않은 과일을 뜻하는 '똘기'. 요즘 내 몸이 딱 그렇다. 맛이 시고, 떫고, 때로는 배앓이를 부르기도 한다.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신호들이 와류한다.


햇볕은 제법 따갑지만, 나무들은 잎을 더 내야 하고, 매미는 아직 울지 않는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시기에서 내 마음도 몸도 천천히 적응 중이다. 하루하루 불편하고, 때때로 미안하고, 무엇보다 자주 고마운 마음이 된다.


그렇게 초여름의 똘기처럼 우리도 천천히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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