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가졌다는 걸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다.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확인한 날이었다. 아직 초음파 사진도 없었고 아기집도 보이지 않았지만, 수치로 확인된 임신이라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이 숫자가 정말 생명을 말하는 건지, 이제부터 무언가 달라지는 게 맞는 건지 딱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느껴지는 신체적인 변화는 없었기에 낯이 선 기분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운전석에 앉은 남편이 말했다. “어머님한테 말씀드리러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어디론가 가야 한다면, 그건 역시 엄마였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5월의 끝자락. 담벼락마다 제 철을 만난 듯 탐스럽게 핀 장미가 바람에 간들간들 흔들린다. 장미들이 괜히 나보다 먼저 들떠 있는 것만 같았고 축하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의 뜨락에도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분명 깜짝 놀라며 기뻐할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엄마의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아, 그래? 그럼 이제 일 구하는 건 물 건너갔네.” 그 뜨뜻미지근한 한마디가 전부였다. 정말이지, 너무 담백해서 당황했다. 오히려 안 좋아하는 기색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이거 꽤 놀랄 만한 소식인데… 엄마는 놀라지도, 감격하지도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울 엄마는 역시 쌉T다.’
그 짧은 반응 뒤, 엄마는 실망스러운 내 속도 모르는지 곧바로 내가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꺼낸다. “시드니는 잘 다녀왔어? 거기서 밥은 뭐 해 먹었어?”
다음 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그 반응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엄마께 먼저 연락을 주셨나보다. 임신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께서 기쁜 마음에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사돈끼리 축하를 주고받을 만한 일이니까.
“조금 전에 전화가 왔는데, ‘사돈’이라고 뜨더라고. 그래서 어… 사돈이 누구지? 보이스피싱인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차, 네 시어머니구나!”
엄마는 자기 정신머리가 스스로 웃겼는지 한참을 웃었다. 딸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선 걸까. ‘사돈’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것처럼 보였다. 엄마도 나처럼 새로운 역할에 천천히 적응하는 중이구나 싶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님은 정말 기쁘신가 보더라. 친정 엄마랑 시어머니 차이가 이런 건가 생각이 들었어. “
나는 그제야 어제부터 마음속에 맴돌던 질문을 꺼냈다. “엄마는 어떤데?” “엄마는 솔직히… 그렇게 좋진 않아.” “왜?” “우리 딸 이제 고생문 훤히 열린 건데, 뭐가 좋겠어.”
엄마는 손주가 생긴 기쁨보다, 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소식을 전했을 때조차 엄마는 내가 시드니에서 재밌게 놀았는지를 먼저 물었다. 엄마는 손주보다 딸이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변죽울림이었다.
아기를 가졌다는 건 분명 엄청난 축복이다. 전공도 유아교육인 엄마는 아이들을 특히 예뻐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먼저, 내가 관심사였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많은 친정 엄마들이 손주가 생긴 기쁨이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사회에서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체력이 아직 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지금까지 현역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어도 똑같이 일을 할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 나의 삶’ 전체가 보였을 것이다. 딸이 다시 일터에 나가기 전에, 출산과 육아로 발이 묶이는 건 아닐까 먼저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소식을 알린 이들에게서 진심 어린 축하들을 함빡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의 초점은 나만을 향했다. 축하하는 말이나 선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이렇게 열렬한 사랑을 푸근푸근 느끼게 하는 건 친정 엄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