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by 김밍키

호주에서 날아온 다음 날 저녁, 남편은 귀국 기념이라며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한다.

어제는 공항까지 데리러 와주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식탁에 고기랑 쌈, 찌개, 반찬을 다 차려주더니, 이번엔 외식 기념을 하자고 한다. 가만 보면 참,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맛있는 음식 먹일 궁리만 하는 사람이다. 사실 자기가 먹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한식을 한상 푸짐히 먹여놓고, 한식이 그리웠을 거라며 데려간 곳은 더덕순댓국 집. 더덕이 고명으로 수북하게 올라간 순댓국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어젯밤 꾼 꿈 이야기를 꺼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있는 집에서
일상처럼 밥을 먹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꿈이었다.

그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말을 멈췄다.
우리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남편이 먼저 말했다.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테스트 한번 해보자.”

태몽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꿈이었다.
나는 원래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게다가 생리 예정일까지는 며칠이 남아 있었다.
막바지이긴 했지만, 생리일을 알려주는 어플을 봐도 예측 범위 안에 들어 있었다. 아직 생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할 건 없는 날이었다.


충분히 그냥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우리 둘 다 무언가를 직감한 눈치였다.

남편이 약국에 들어가는 동안, 나는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약사는 각각 다른 회사 제품으로 두 개 다 해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해서 남편은 두 개를 사서 돌아왔다. 테스트기를 받아들고도, 어쩐지 멋쩍었다.
‘아닐 거야.’ 스스로 그렇게 단정 지으며, 괜히 바로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남편이 헐레벌떡 출근 준비를 하느라 나는 한번 깼고, 이내 다시 잠들었다. 두벌잠에서 나는 또 꿈을 꿨다. 어제 사온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있는 꿈이었다.

무의식에 첫 소변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서였을까. 꿈속에서 나는 두 개의 테스트기를 사용했고, 그 둘 모두 한 줄만 나왔다. 그러니까, 비임신이었다.


깬 건지 아직 자고 있는 건지 애매한 그 상태.
머릿속은 흐릿했고 몸은 침대에 붙은 채였다.
그때, 머리를 말리던 남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으면, 테스트기 한번 해봐.”

꿈에 아직 취해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나, 임신 아니야.”

꿈속에서 본 잔상을 진짜처럼 착각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이렇게 꿈까지 꿨으니, 현실에서도 한 줄일 거야.’
내 꿈이 얼마나 정확한지 보라는 듯, 나는 위풍당당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테스트기에 첫 소변을 묻혔다.
몇 초 후, 하나에서 먼저 반응이 나타났다.



선명하게, 빨간색 두 줄. 믿을 수 없었다.
나머지 하나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3분쯤 흘렀을까.


그것도 똑같이, 두 줄이었다.



정말일까, 나한테 일어난 일이 맞을까.
그저 그런 평범한 꿈이었다.

하지만 그 별거 아닌 꿈이, 슬쩍 귀띔해 준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몸속 어딘가에 작고 조용한 변화가 먼저 꿈으로 스며들었다는 게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씨앗이 있는 상태로, 편도 약 11시간의 비행을 오갔고, 호주의 7박 9일 동안 하루 평균 2만 보를 걸었으며, 간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맥주를 나눠 마셨고, 하루 두 잔의 라테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러한 극기훈련에 가까운 것들을 견딘 새싹이 신통방통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날에 무언가 이미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두렵고, 놀랍고, 기뻤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친구와 함께 떠났던 시드니 여행이 태교 여행이 될 줄이야.


지금 호주에선 낙엽이 지고 있다. 서늘한 바람과 갈색의 거리. 그리고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온 한국은
녹음방초가 우거진 초여름이었다. 계절은 바뀌었고, 내 안에도 새싹 하나가 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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