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계절을 지나

by 김밍키

“나 암 아니래.”


동생에게서 단출한 카톡 하나가 왔다.

동생은 이 주 전쯤 아산병원에 입원을 하여 상세불명의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고 조직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수술을 마친 교수님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조심스레 기대 쪽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만 움직이진 않는 모양이다. 잔잔한 불안이 어딘가에 깔려 있었다.


5월 진입과 동시에 시작된 황금연휴, 의정부에 다녀왔다. 해가 확실히 길어지고, 골목골목이 푸른 오월이지만 아직도 기온은 낮다. 낮에만 포근한 편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겨울인 양 쌀쌀했고 손발이 차가웠다. 이렇게 추운 가정의 달이 있었나 싶었다. 니트로 된 카디건의 소맷자락을 움켜쥐며 친정에 갔다. 오랜만에 본 가족들의 얼굴이 반가웠다.


그러나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동생은 생각보다 기운이 없었다. 밝아진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낯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며칠 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담담한 말투로, 응급실에서의 일을 전해주었다.

수술 며칠 뒤, 갑자기 실핏줄이 터져 피를 쏟았고, 응급실로 실려가 다시 수술을 받았던 날의 이야기였다. 보통은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인데, 무슨 이유인지 국소마취만 하고 진행했다고 했다.


“진짜 아파서 죽을 뻔했어.”
너 술 마셔서 그래 따위의 잔소리를 들을까 봐인지 아프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동생이다.


당시의 상황은 꽤 긴박하게 들렸다.

죽기 직전의 고통을 느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몸의 모든 근육이 다 풀어졌고, 밀어닥치는 배설 욕구에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일어난 후 그대로 기절을 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고, 자신이 쓰러졌냐고 의료진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그냥 여기서 누워서 일을 바로 보시라 했다고 한다.


새파란 청춘이 겪기에는 다소 민망했을 법한 일들을 그렇게 침잠하게 말했다. 심한 통증을 겪은 사람이 그 기억을 정리해서 꺼내 들려줄 때, 듣는 사람은 그저 가만히 있게 된다.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병원 안에서 젊은 아들을 부축하며 다닌 환갑의 우리 엄마도 같이 안쓰러웠다.

그런 일화를 생생히 전해 들어서인지, “나 암 아니래”라는 말이 그저 결과가 아니라 살아 돌아온 사람의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겨우 해묵은 겨울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동생은 배달음식과 편의점 식사를 좋아한다. 친구와 유흥을 사랑하는 동생은 지병이 있어 조심해야 함에도, 친구들과 자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해뜨기 전 잠든다. 그렇게 다방골잠 자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해 왔다. 거의 매 주말마다 달리는 대쪽 같은 그의 모습은 어떠한 절개라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잘 몰랐다. 걱정을 내비치면 날 진지충 꼰대로 치부해 버렸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면서.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었다. 우리 집 금쪽이는 사춘기가 오래 지속 중이었다.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은 쌓이는 게 아니라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몸은 늘 조용히 말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들다. 그리고 그 신호를 외면한 대가는 생각보다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날의 고통이 동생의 몸 어딘가에 남아 계속 신호를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 아픔이 괜한 우연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돌보게 하는 매일의 각성이 되어 이제는 그 투미한 습관들을 모두 끊어내길.


몸에도 제철이 있다.
그때그때 잘 돌보고, 제때 멈추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해묵은 계절을 지나 해묵은 습관을 버리고, 서로가 몸의 제철을 챙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정리하지 못했던 겨울 카디건을 이제야 정리한다. 이번 봄이 조금 더 오래오래 따뜻했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3화버들가지 살랑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