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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사람 Mar 20. 2021

온갖 것들이 짜증나는 병

 어릴 적 나는 짜증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꼬맹이였다. 엄마는 그런 말을 계속하면 정말 짜증나는 일만 일어나는 거라며 하지 말라고 혼을 냈다.

 모든 유년기에는 미래가 들어서는 어떤 한 순간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가 내 언어 습관이 바뀐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때 나에게 그 꾸지람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그래서 나한테 요즘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물론 신빙성이 전혀 없는 말도 아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여전히 믿는다. 인간은 자기가 내뱉는 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당시엔 누적된 경험 없이 그냥 음성 그대로 깨달은 말이었다. 어린 마음에 정말 내 인생이 짜증나는 일만 가득하게 될까 봐 무서워서 부정적인 말을 하고 싶을 때도 꾹꾹 참았다. 그 순수한 인내 덕분에 나쁜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나았다고 생각했던 그 '짜증나병'이 요즘 도로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온통 짜증나는 것 투성이다. 왜 다들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는지,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해하고 싶어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고민해보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공감 능력이 괜찮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영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병이 도지는 데 이바지한 여러 일화 중 하나는 중고거래의 채팅에서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을 수 있는 걸 "사이즈는"이라며 서술어를 간략하게 생략해버리는 것이다. 더 짧게 세 글자로 압축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무례하다. 그 정도로 자판을 치는 게 귀찮으면 숨 쉬는 것도 귀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일부분이다. 더한 일들이 많다. 상대방은 악의 없이 한 사소한 말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다. 그 조그만 것 하나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내가 요즘 예민한 걸까, 그런 일이 요즘따라 몰아닥치고 있는 걸까. 아님 그 둘 다일까. 분명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건데도 이미 날카로워져 있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싫지만 나의 이런 성향을 잘 알만한 사람이 그러는 건 더 싫다. 별 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서운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내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두 손바닥을 마주쳐야 박수소리가 나듯이 모든 갈등은 한쪽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어찌 됐든 그 갈등이 해소가 되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바로 풀어서 없애지 않은 충돌은 나를 극으로 몰아세운다. 아예 단절을 하고 싶게 만든다. 카카오톡까지 지웠다. 소중한 정보가 있고 연락처가 있고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우울한 기분에만 초점을 둔다. 그냥 아무것도 보기 싫은 마음에 스스로도 몰랐던 과감함이 뿜어져 나온다.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내가 가능한 일이겠냐마는 정말 잠수함에 들어가서 몇 날 며칠 있다가 나오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만 애태우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더 그래야만 했다. 그냥 잠시 모든 관계를 중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는 생각도 든다. 꼭 메신저를 다 지워서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해야 하나. 의지를 가지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항상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나.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일찍이 고치지 못한 내 나쁜 습관일 것이다.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 내면의 어두움이 이제야 드러난 것일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버리기 전에 하루 빨리 고쳐야겠다.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잘 해낸 것처럼 지금의 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모르는 사람까지도 나를 짜증나게 한다. 짜증난다고 말을 해서 더 그런 일들이 겹쳐서 생기는 걸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니 복잡한 마음이 환기가 되면서 긍정적인 다짐도 생긴다. 공부만 하기에도 스트레스 받는데 이런 감정 소비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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