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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예원 May 03. 2021

Madison Square Park

소음과 초록 의자, 그 사이의 쉑쉑 본점

    지난 열 달 동안은 집으로 향하는 길이 되었던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고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여느 맨해튼 공원에 있는 초록색 의자와 함께 일반적으로 그와 매치되는 얇은 철 테이블보다 두 배는 비싸 보이는 무거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내가 야외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뉴욕에 와서 알았다. 여름에는 집에서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와이파이도 없는 센트럴 파크나 다운타운 피어에 가서 하곤 했는데,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친구들과 학교 뒷산에 가서 공부한 게 생각이 나며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몰입해서 아이패드에 이것저것을 끄적이고 공부를 하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와이파이가 안 되어 서치보다는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위주로 하다 보니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와서 뿌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눈앞의 플랫아이언 빌딩은 뉴욕에 처음 온 날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바위에 올라가다가 다리를 다쳐 일주일간 걷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인데 어느새 그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아까는 없었던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 옆에서 몽환적인 케이샤 드럼을 연주하던 뮤지션은 자리를 옮겨 저쪽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변의 소리가 이곳이 뉴욕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트럭 지나가는 소리, 아기 우는소리, 쉑쉑 버거 오더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직원들의 목소리, 짹짹거리는 새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렌 소리. 이 모든 게 섞이고 볼륨이 반으로 줄어 백색소음이 된듯한 느낌이다. 귀가 찢어지는듯한 사이렌 소리에 고통스러워할 때 언니가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잘 못 듣게 된다고 말해줬는데, 이게 바로 소음에 익숙한 뉴요커의 특징일까? 와이파이의 부재와 소음은 가끔 사람을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

뉴욕 공원 곳곳에 있는 초록색 의자

    문득 앞에 있는 초록색 철 의자를 봤다. 작년에 파리에 갔을 때 튈르리 공원에서 본 의자이기도 하고 뉴욕의 모든 공원에 있는 뉴욕 공식 의자이다. 처음에 봤을 때에는 정말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예쁠 뿐만 아니라 도심 속에서 시민들이 자연을 느끼게 하기 위한 공원의 취지와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어렸을 때에는 버버리 체크무늬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버버리 체크가 그려진 트렌치코트나 핸드백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이게 바로 교육된 취향일까?


    매디슨 스퀘어 파크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는 쉑쉑버거는 놀랍게도 쉑쉑버거 본점이다. 인천 송도에 있는 쉑쉑버거도 반짝반짝한 새 건물에 있는 2층짜리 지점인데 왜 그 본점을 과자집을 연상케 하는 공원 속의 작은 오두막 지점으로 선택했을지 항상 궁금했다. 잠시 생각해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귀엽고 재미있는 (playful 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쉑쉑버거는 이름도, 폰트도, 굿즈들도, 매장 내부에 있는 오락 공간도 재미있다. 일반적인 건물 1층에 자리하는 것보다 이렇게 숲속의 작은 집처럼 만들어두고 사계절 내내 귀여운 꼬마전구를 달아두는 게 브랜딩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다.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자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매디슨 스퀘어의 아이콘이 된 것은 어쩌면 공원의 작은 부분을 빌리면서 뉴욕의 랜드마크를 단 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쉑쉑을 쉑쉑으로 만들어주는 냄새를 맡고 한 번 먹어본다면, 아니 냄새를 맡았음을 기억이라도 한다면 그건 엄청난 가치를 보장할 것이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쉑쉑버거 본점이 위치한 이상 쉑쉑은 망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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