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신 후 한동안은 엄마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장례를 치르면서 하나님께서 발걸음 발걸음마다 함께 하심을 느끼며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좋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 것도 좋았다. 내곁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그들의 힘든 순간에 늘 함께 있어줘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몇주가 지나자 마음이 텅빈 것 같았다. 가슴 한켠이 아픈 게 아니라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시달렸다. 나는 한동안 아이들이 학교가는 모습도 보지 못 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서 누워서 계속 잤다. 남편이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여 보냈다. 엄마 노릇을 잘 못 하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나에게 아들이 한마디 해줬다.
"엄마 괜찮아. 엄마는 그럴 때잖아."
내가 이렇게 아들을 잘 키웠던가. 그래 내가 그럴 때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것도 이상할만큼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지 고작 2,3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마음이 텅빈듯 허전한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가정도 돌봐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했다. 마음이 너무나 슬픈데 슬퍼할 시간도 공간도 없고, 슬픔을 나눌 대상도 없었다. 나는 이미 엄마가 아픈 오랜 시간 동안 친한 친구들에게 너무 많이 털어놓았다. 내 친구들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는 어느 날부터 난 입을 닫았다. 내가 힘들고 슬프다는 걸 아는 좋은 친구들이 날 위로해줬지만 언제까지 엄마 아프고 슬펐던 이야기를 계속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엄마만 아픈 것도 아니라는 걸 장례를 치르면서 알았다.
엄마가 안 계시다는 걸 살짝 덮어두기로 헀다. 그냥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상을 살아갔다. 가끔 뜨는 엄마의 사진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지만 얼른 사진을 덮어두었다. 엄마가 계실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엄마의 아픈 모습이 아닌 원래 곱고 예뻤던 엄마를 추억한다는 점이다. 엄마는 정말 곱고 예뻤다. 소녀같고 곱다는 말보다 엄마를 잘 설명할 단어는 없다. 단아하고 곱고 아름다웠다. 꽃으로 치면 장미보다는 여리여리한 들꽃같았다. 그렇게 난 너무 아프지 않도록, 천국에서 자유롭게 웃는 엄마를 상상하면서 지냈다.
내일은 엄마 산소에 가는 날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 가족은 모두의 시간이 적절한 내일을 미리 약속해두었다. 봄꽃이 피는 이 아름다운 봄날, 엄마에게도 꽃을 주고 싶었다. 사실 엄마 산소를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거리가 먼 시골 선산에 꽃을 잘못 심었다가는 오히려 지저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꽃집에 들러 꽃을 사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바로 꽃을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엄마 산소에 가져갈 꽃을 좀 사려구요."
"그럼 조화가 필요하신 건 아니세요?"
"아니요, 생화를 가져가려구요."
"혹시 흰색 꽃을 가져가실 건가요?"
"아니요, 색이 있어도 될 것 같아요. 연한 핑크 작약이 있나요?"
"아이보리색 작약은 좀 있어요."
"네 그럼 제가 가서 고를께요."
가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색을 떠올렸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났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오래전에 오빠가 연한 분홍색 작약을 사드렸는데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시각적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져 눈앞에 있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 했다. 그래서 꽃을 사드린지는 오래됐다. 그런데 오랜만에 엄마가 좋아하는 색의 꽃을 사려고 하니 엄마가 뭘 좋아했는지부터 생각이 시작되었다. 꽃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눈물이 났다. 잠시 진정하고 들어가서 연한 분홍색 꽃들로 가득 채웠다. 화병에 꽂을 수도 없고 잘못 뒀다간 다 날라갈 수도 있으니 포장 없이 산소 앞에 두기로 했다. 물에 꽂지 않으면 꽃이 하루이틀이면 시들텐데. 그래도 엄마에게 꼭 생화를 주고 싶은데 시든 꽃이 덩그러니 있을 산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죄송해요.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돼서요.."
꽃집 아가씨는 괜찮다며 휴지를 건넸다. 우는 나를 보며 아무래도 꽃을 더 넣어주신 것 같다.
"포장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냥 산소에 두고 와야할 것 같거든요. 그냥 꽃을 가져갈 때 보호만 되면 되니까 쓰던 비닐로 감싸주셔도 괜찮아요."
"아니예요. 엄마한테 예쁘게 가져가셔야죠. 깔끔하게 해드릴께요."
꽃집을 하시는 분은 매일 예쁜 꽃을 봐서 마음이 예쁜걸까. 물주머니에 물도 많이 채워주고 꽃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로 감싸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꽃을 들고 나왔다. 자주 갈 수 있으면 매일 꽃을 바꿔 꽂아둘텐데. 엄마는 천국에서 더 아름다운 꽃밭을 누비며 살 거라고 믿으며 아픈 마음을 추스린다.
나의 눈물버튼 엄마. 우리를 잘 키우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엄마. 역할에는 조금만 최선을 다하고 엄마의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엄마의 삶이 어떠했든, 나는 그러한 엄마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배운다. 엄마에게 좋았던 것, 아쉬운 것 그 모든 것이 삶이고 배움이다. 그러니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말자. 나는 내 삶을 살고 아이들은 나에게서 배울테니.
내일 엄마에게 잘 다녀와야지. 눈물이 나면 나는대로 충분히 울고 엄마를 만나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