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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멤버십으로 구독료를 받으면 글이 잘 써질까?

민감하고 예민한 브런치 작가의 개인 생각

by 고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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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남긴 지 시간이 좀 흘렀다. 글은 300편이 조금 넘었고 중간에 삭제한 글까지 포함하면 400편 정도 짧고, 약간 긴 글들을 써온 것 같다. 물론 글쓰기가 생계가 아닌 어떤 취미로 존재하기 분량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세월은 어떤 평범한 남자의 글쓰기 스타일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지난 시간의 흔적을 돌아보면 언제나 어설프다. 군대 참모부에서 처음 일할 때 나는 인사과라서 보고서를 참 많이도 썼다. 간단한 보고서부터 조금 깊은 내용까지. 밤샘으로 쓴 적도 많았다. 그런데 대대장은 보고서에 만족하지 않고, 나보고 소령한테 가서 검토받고 오라고 했다.

자존심이 어찌나 상하던지. 난 나답게 가지 않았다. 나름 잘 썼다고 착각했다. 아니 오만일 것이다. 그런데 그 힘들다는 인사과에서 3년 정도 버틴 어느 날, 서류 정리를 하다가 옛날 보고서를 발견하고 나는 웃었다.

어쩜 이렇게 어설픈 보고서가 다 있던지. 기안자는 당당하게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당시 대대장의 지시가 이해가 되었다.


브런치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금 3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아주 처음에 쓴 글들은 역시나 지금보다 더 부족하다. 이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글쓴이가 읽어도 잘 모르겠는 것들도 많다. 물론 지금도 내가 뭐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글을 빠르게 쓰는 편이라서 구성도 그렇고 내용의 깊이도 항상 모자란다. 그럼에도 논문처럼 몇 번을 다시 읽으며 수정하지 않는 이유는 평생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열정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흔이 조금 넘어서 느낀다. 그런데 그 열정의 한도를 너무 한 번에 사용하면 더 빨리 한계점에 도달한다. 사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한도는 논문이다. 물론 이것도 글쓰기이다.

19년도 석사과정을 들어가서 25년 지금까지 나는 논문과 씨름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이제 졸업장을 받기만 하면 되지만, 한 사람의 욕망 때문에 최근에도 등재지에 투고를 했다. 그러니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브런치에 내가 남기는 글과 다르게 논문은 아주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글이다.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론적 배경을 쓰고, 연구 주제와 목적 달성을 위한 연구 방법론도 고민하여 써야 한다. 물론 분석파트도 계속 글쓰기의 연속이다. 게다가 언제나 심사 위원이 존재한다. 날카로운 지적에 글을 몇 번이고 수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몇 년 하다고 보니 나는 번아웃 비슷한 것을 또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내 의지로 아직은 논문을 쓰고, 주제를 찾고, 결과를 도출한다. 혹시나 모를 행운? 또는 제2의 인생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열정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써야 하니 쓰는 논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그렇다.


박사논문 심사 때, 심사 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교수님이 인준지 서명을 받으러 가니 내게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셨다.


"축하해! 이제 평생 동안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생겼네." 교수님은 논문 글쓰기가 놀이터 놀이처럼 아직도 좋다고 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방학이면 집과 연구소에 글을 쓴다고 했다. 가식은 없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분은 정말 논문형식의 글쓰기를 즐기고 계셨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돈도 벌고, 명예도 있고, 자부심과 노후의 취미 걱정 따위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게 논문이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인준지에 도장이 번질까 봐 걱정을 하는 동안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가 멤버십으로 구독료를 받는다고 할 때 조금은 왜...?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예상했던 결과이다. '응원하기' 기능이 생겼을 때 이런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응원은 모든 글을 읽은 독자의 선택이니 조금은 덜 부담되었다. 그럼에도 어머니 이야기로 어느 독자분이 10만 원이라는 큰돈을 보내셨을 때 생각이 많이 지기는 했다.


"돈을 주는데 글을 더 잘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했다. 기쁘지는 않았다. 부담 때문에 오히려 짧게 짧게 많이 쓰던 글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자연스러움도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물론 누군가는 '그냥 써'라고 아주 간단히 말할 것이다.

주는 사람과 구독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들의 것이니, 쓰는 사람을 그냥 쓰던 대로 쓰면 된다고.


그런데 앞에서 계속 언급했던 것과 같이 내게 아주 극도로 예민한(HSP)라서 그게 잘 안된다. 신경이 쓰이는데 어찌 신경을 끄란 말인가. 내가 신경을 끊는다는 것은 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어쩌면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멤버십으로 글을 올리면 아무도 구독을 하지 않을까 봐 졸아서. 소심함이 내게 속삭이고 있어서 그럴지도.


하지만 이런저런 내 이야기를 남겨두는 것이 여전히 좋다. 살아 있는 것 같다. 아픈 글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게 위안이고 위로가 된다. 간간히 진심을 담아 댓글을 남겨주는 독자분들께도 항상 감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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