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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나의 '트리거'는 무엇일까?

by 고용환

무엇인가 특별한 여가활동이 없는 내게 유일한 휴식을 주는 시간은 아마도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머리를 멍한 상태로 두고 무엇인가를 보는 시간은 예민한 반응에서 탈출하는 고요한 시간이다. 보통 여유가 있으면 매일 운동을 하려고 한다. 헬스장에 가서 이어폰 소리를 최대로 올리고 러닝 머신 위에서 적당히 달리며 시리즈 중 끌리는 것을 골라서 본다.


최근에는 '트리거'를 보고 있다. 아무 흥미 있는 소재이고 '총기'를 제외하면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 트리거가 있다.' 그것을 건들지 않으면 정상의 범주에 속하고 그것을 건드리면 비정상이 된다. 아직 다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흔히 약자 포지션에 놓여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고 또 참다가 폭발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 폭발은 총기를 통한 살인으로 이어진다.

그들 중 일부는 착하고, 순하며, 성실하고, 법규를 잘 지키는 선한 시민 또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트리거는 지켜야 할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오는 분노가 촉발 요인이다. 이런 설정 때문인지 러닝에서 내려오기 힘들었다. 뻔한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충분히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얼마나 참아야 하나, 그 뻔뻔함과 사악함을. 나도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나 모든 것에 민감 하게 반응하는 성향 때문에 이런 자극이 더 강하게 나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에는 나도 뭔가 외부로 이런 감정을 표출했던 거 같다.


예를 들면 화가 너무 나면 길거리에서 소리를 '악' 지른다거나 돌발행동을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군대에 말뚝을 박으면서 나는 차츰 성격이 차분해졌다. 자극이 없어서 차분해진 것은 절대 아니다. 군대는 아주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사소한 것에도 상처를 받거나 자극을 받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아무리 악을 쓰고 발악해도 계급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트리거'는 좀 차갑게 말하거나 그 자리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이 어디 가겠나. 스리즈에서 그들에게 총과 탄약을 준 것과 같이 어떤 식으로든 너무 힘들면 터지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다행히도 다른 방법을 찾아서 해소를 했다. 그건 바로 예민함을 무기로 한 행동으로의 실천이었다. 예민함을 무기로 했다고 하면 뭔가 쪼잔한 것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예민함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안테나를 최대한 세워서 상관들의 니즈를 더 빠르게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빠른 시간에 달성해서 주고, 내가 원하는 얻는 이런 방식을 취했다. 뭐 나름의 소소한 총격전이었다. 그러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정말 참기 힘든 상황을 만나면(대부분 내 주변 사람들이 피해 보는 일들) 그들의 잘못을 잘 정리해서 처벌을 받도록 조용한 내부고발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정면에 나서지 않았으니 비겁하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건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폭발하지 않고 이런 불합리함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이런 방법이 유일했다.


안 그랬다면 대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트리거'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사실 이미 군에서 일어났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격오지에서 일병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로 군대는 부조리를 척결하겠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지켜본 결과 그 노력은 분명한 결실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기 때문에 군인다움은 사라졌다. 나는 어디가 맞다고 논하지 않겠다. 단지 그때 총기 난사는 분명한 '트리거'였던 것이다.


전역을 하고 요즘은 나름 고요하다. 고요하는 것은 접촉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를 화나게 하는 존재들과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민한 성격과 극도로 심한 I 성향이기에 나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자극하는 것들에 노출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중학생쯤 보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필로티 밑에서 대낮에 걸쭉한 욕을 하며 담배를 연신 피웠다. 그러다가 한 명이 길빵을 하며 아주 당당하게 단지 가운데를 걸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는 마음에서 수천번 트리거를 당겼다. 딸이 내 옆에 없다면 저것들을 어찌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지나간 적어도 20명 정도의 성인들도 그냥 그들의 젊은 타락질을 방관했다.


"분명 우리 단지 거나 근처 단지에 사는 학생들일 텐데... 요즘 아이들 무서운데 괜히 뭐라고 했다가 이상한 짓거리를 내 자녀에게 하면 어쩌나... "


나는 그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이미 지난 일인데 다음에 그 아이들을 마주치면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했던 거 같다. 쓸데없는 정의감. 사실 정의감도 아니다. 당연한 도리이고 의무인데 우리 스스로가 놓아버린 이기적인 태도에 대한 결과물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을 보면 피해서 도망이라도 갔는데.... 20년이 조금 지난 지금 세상은 더 차가워졌고, 중심이 무너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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