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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an 17. 2024

"열라는 콩팥은 왜아니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일제강점기 <조선속곡집>의 동백과 박달나무

강원도를 배경으로 하는 김유정金裕貞(1908~1937)의 소설 ‘동백꽃’의 동백이 생강나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생강나무의 강원도 사투리가 동백인데, 이 사실은 정태현의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 채록되어 있다. 주로 남해안과 제주의 바다 가까운 곳에 자라는,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 서해의 따뜻한 해안선을 따라 경기도까지 자라지만, 강원도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반면 생강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자생하므로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동백은 생강나무인 것이다.


(좌) 동백꽃, 2018.4.16 여수 금오도 (우) 생강나무 꽃, 2021.3.19 양평


최근에 우연히 1929년 간행된 이상준李尙俊(1884~1948) 저著 <조선속곡집朝鮮俗曲集>* 이미지를 보다가 ‘강원도 아리랑’이 눈에 들어왔다. 가사를 가급적 원문 그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열나는 콩팟은 안이 열~고~~~

아지깔이 동백~은 웨 열니~느냐

아렁 아리렁 아라이~요~~~

아리렁~ 얼시구 노다 노다 가세



참고로 현재 애창되는 조용필이 부른 ‘강원도 아리랑’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 ~~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

https://www.youtube.com/watch?v=OljynVjajgg


생강나무 열매 (동백), 2022.10.29 유명산


지금껏 나는 이 노래의 동백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노래가 강원도에서 옛날부터 불러왔던 민요를 채록한 것이라면, 이 노래의 동백도 당연히 생강나무일 것이다. '강원도 아리랑'에서 봄을 상징하는 생강나무 꽃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생강나무 열매를 노래한 것을 보면, 배경은 여름이나 가을일 것이다. 이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으로 여인들이 머리 치장을 했다고 하니, 이 노래도 청춘들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리라. '아주까리 동백'은 아주까리 기름으로 대용하는 생강나무 열매라는 뜻일까? 아니면 아주까리 열매와 생강나무 열매를 병렬한 것일까? 아무튼 내가 본 한글 문헌으로는 이 <조선속곡집>의 강원도아리랑이 생강나무를 ‘동백’으로 표현한 가장 오랜 문헌이다.



이상준은 일제강점기 음악인이다. 그가 편찬한 1929년판 <조선속곡집>은 그보다 먼저 1914년 즈음 간행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선속곡집-상권>의 증보판이라고 한다. <조선속곡집-상권>에는 ‘아르렁타령’이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개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르렁 아르렁 아라리오 아르렁 띄여라 노다가게. 남산우에 고목나무 나와갓치만 속썩는다 아르렁 아르렁 아라리오 아르렁 띄여라 노다가게”이다.**


과연 이 노래의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무엇일까? 홍두깨 방망이로 쓰였다니 단단한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Betula schmidtii에 ‘박달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 전까지 박달나무는 차축 등에 쓰인 굳센 나무를 뜻했고 지방에 따라 박달나무로 불린 나무는 서로 달랐다고 한다. 즉, 지방에 따라서는 박달나무뿐 아니라, 육박나무, 팽나무, 당단풍나무, 산딸나무를 뜻할 수도 있다.*** 언젠가 문경새재에 올라 정말로 박달나무가 많은지도 살펴봐야겠구나.


문경새재 박달나무들, 2024.2.13


(2024.2.17 추가) 나는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과연 박달나무(Betula schmidtii)인지 확인하기 위해 안동 다녀오는 길에 문경새재를 제2관문까지 걸으며 나무를 감상했다. 해발 고도 300미터 가량 이상부터 박달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숲을 이룬 곳도 있었는데, 문경시에서 아예 문경새재는 박달나무로 유명하다고 팻말도 세워 두었다. 

(끝)


* 朝鮮俗曲集, 李尙俊著, 京城 三誠社 發行, 昭和四年, p.21

** https://www.yna.co.kr/view/AKR20130911151600053

*** <명물기략>에서는 육박나무를 ‘박달’로, <산림경제>에서는 팽나무를 박달로 표기했다.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당단풍나무와 산딸나무의 지방명으로 박달나무를 채록하고 있다.

+표지사진-생강나무 (2022.10.29 유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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