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게 계기가 있는 듯하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시작은 3년 전, 14년간 살았던 아파트를 이사였다.
방마다 베란다가 있었던 48평의 아파트를 이사해야 했다.
특히나 우리 집은 명절마다 차례를 지낼 때
지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들이 오고 가는 큰집이었기 때문에
그릇도 가득, 이불도 가득
모든 물건들이 많은 집이었다.
그 뭐라 그러더라
사극에서 볼 법한 수 놓인 두꺼운 솜이불. 보료 같은 거
그거 3채나 있었음
그리고 베란다에 손님전용 식기만을 넣어둔
180cm 크기의 장이 있었음
엄마아빠 연애시절,, 자주 다녀서 샀다던 스키 세트도 2개가 있었고
가족이 캠핑을 좋아해서 온갖 캠핑장비
집 천장까지 닿는 2m짜리 크리스마스트리
어휴 생각만 해도 집안에 정신없다
48평의 집을 비우고 14평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기 때문에,
큰 가구들은 물론이고
정말 많은 잡다한 것들을 처분해야 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대학생활로 인해 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 방을 정리하고 가족과 집을 합치기로 했었다.
그러니까 이사 짐정리를 2번 해야 했다는 이야기..
본가는 그렇다 쳐도
나가 살던 코딱지만 한 방에 뭐가 계속 나와서 놀랬음..
그 당시에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아 모든 애플 박스를 보관했고
키보드가 3개, 마우스가 3개, 노트북과 함께 쓰던 모니터가 2개
그 밑에 딸려있는 케이블은 말해 뭐 해, 수십 개지
아니 사람은 하나고, 내 손은 두 개가 다인데,
뭔 마우스가 3개나 있었지?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아쉽다.
다만 나는 애초에 옷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옷은 많이 없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그런데도 어디서 꾸역꾸역 넣어놓은 옷들이 있긴 있더라
본가에서는 오래 묵은 집이 다들 그렇듯이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도 나왔다
지금은 잘 쓰지 않은 디스크나 비디오 테이프에
내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의 영상이 가득
내가 입은 배냇저고리, 육아일기, 내 손가락이 두 개 들어가는 애기신발
태어나서 처음 자른 머리카락도 지퍼백에 있더라
사실 비밀인데 (아님)
나는 당근을 잘한다.
중고거래 당근마켓을 그때 처음 깔아 사용했는데,
무료 나눔도 당연히 많이 했고 엄마가 오래전에 보던 요리책까지 팔아봄
뭔가 판매 게시글을 이렇게 하면 잘 팔리겠다 눈에 보였고
사진도 잘 찍어서 도움이 됐음
덕분에 엄마아빠의 혼수였던 오래된 식탁, 장롱도 팔았지
고재 가구도 많았는데 다 처분했음
그냥 이삿날에 버릴 수도 있겠지만
돈이 드니까ㅎ
책도 매입하는 곳을 찾아 열심히 처분하니까
20만 원 정도가 나와서 고기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버리고 팔고 나누고 하다 보니
48평 집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작은 방도 시원하게 비우고
아마 그때를 계기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미니멀라이프, 얼마나 보기 좋아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고, 하나의 물건을 다용도로 쓸 줄 알고
나의 에너지와 돈을 아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현대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이고 지고 산다니까
물건에게 공간을 할당하고 관리하는 일이 피곤하지는 않은 걸까
부지런하기도 하지
나는 그럴 성격이 못된다.
청소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