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8탄
1월 29일. 파리 2일차.
오늘의 동선
노트르담 대성당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 퐁뇌프 다리 → 오르세 미술관
목차
1. 노트르담 대성당
2.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3. 센 강
4.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유서 깊은 성당. 고고한 성당. 고딕 양식 성당.
10년 전 쯤인가, TV에서 숭례문이 불타는 뉴스가 속보로 나왔었다. 어느 취객이 불을 질렀고 숭례문이 불타오른 뒤 기와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 생중계됐었다.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였고 불 붙은 지붕은 덩이째 뚝뚝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눈물짓는 국민도 더러 있었다.
본인이 양동이에 물을 퍼다가 직접 달려가 불을 끄고 싶어하는 국민들도 많았을 터.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센 강을 지나다 만난 비둘기.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는 속보를 봤다. 2019년 4월이었나. 불타는 지붕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화재를 지켜보는 프랑스 국민들의 심정이, 숭례문 화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우리 국민의 마음과 같았겠지.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백 년에 걸쳐 지어졌다. 12세기 경 공사를 시작하여 수백년 동안 보수, 확장 공사를 이어갔다. 수 많은 프랑스인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성당이다.
그래서 고고하다.
입장료는 무료다.
외벽에도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성당 앞 광장은 넓다.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넓이다. 무장을 한 프랑스 경찰들이 3인 1조로 순찰을 돈다. 한 명은 MP5 정도로 보이는 휴대가 간편한 자동 소총을 차고 나머지 두 명은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있다.
1. 스테인드글라스
바깥에서 성당을 바라볼 때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한 창에 불과해보인다. 건물 안에 들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을 쬐는 순간 '성당'의 진가를 몸소 느끼게 된다.
4K TV의 색감을 광고할 때 이런 스테인드글라스 장면을 많이 사용한다. 4K, 5K, 7K, 10K가 와도 스테인드글라스의 고고함은 담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영롱한 빛깔은 성당 내부에서만 보인다. 성당이 주는 엄숙함을 배가시킨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보통 성서의 내용이 그려진다. 과거, 글을 모르던 민중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성경을 익힐 수 있게 했다. 성경을 빠르게 익혀야 군주는 쉽게 민중의 얼을 지배할 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통치 수단의 일종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성서 스토리에 빠져들고 흠뻑 젖어들고서 예수를 찬양하게 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본인(군주)은 예수의 대행자임을 강조한다. 나는 예수의 대행자이므로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스라이팅하는 것이다.
2. 돔
엘레베이터가 위로 올라갈 때 몇 초간 느껴지는 '무중력 상태'가 있다.
가만히 고개를 위로 들어 노트르담 성당 천정을 바라보면 무중력 상태가 눈에 들어찬다. 4D로도 담을 수 없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노트르담에 온다면 위안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유 없는 평온함과 경외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양쪽 기둥 사이로는 의자들이 늘어서 있다. 앉아서 예배를 볼 수 있다. 미사는 매일 12시에 열린다. 2초 간격으로 종소리가 여러 번 울린다.
<플랜더스의 개>에서 버려진 소년 넬로는 추운 겨울, 성당 앞에서 파트라슈를 껴안은 채 죽어간다. '괜찮아, 파트라슈. 괜찮아, 조금씩 달라질거야' 하고는. 이런 성당이 아니었을까.
생의 마지막을 의지하고 싶은 안식처.
3. 프랑스의 꿈
성당을 짓는 데 많은 인력이 동원됐다. 사람이 손수 나르고 쌓았다.
왼쪽 점포와 오른쪽 점포, 두 군데로 나뉜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있다. 다리를 건너면 어느 서점이 나오는데, 앤티크한 간판에 사람들이 꽤 모여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뭔지도 몰랐고, 여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
고서점이었다. 넷플릭스 미드 <너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 Joe가 일하는 서점처럼.
왼쪽 점포. 원룸보다 작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두 장소로 나뉜다. 점포가 바로 옆에 붙어있지만, 왼쪽 점포는 고서적들만 취급한다.
대부분 초판본이 아닐까. 가격도 10만원을 넘는 작품들이 대다수다.
강한 이끌림을 느꼈으나 꾹 참아냈다. 향수통을 가져와서, 이 초판본 서적들이 뿜어내는 향내를 담아가고 싶었다. 헤밍웨이도 자주 놀러온 곳이랜다.
오른쪽 점포로 이동했다. 여기는 2층짜리 큰 건물이다. <비포 선셋>에서 제시(에단 호크)가 사인회를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정수는 2층이다. 2층에 올라가면 다락방 분위기가 난다. 피아노도 있고, 굉장히 비좁다. 몰래 낮잠 자고 가고 싶은, 그런 공간이다.
<사진 찍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었어서 황급히 찍느라 사진이 흔들렸다.
책 한 권 구매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원서. 10유로.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해서인지 날씨는 거무죽죽했다.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하늘.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 남자 주인공 '길'은 밤마다 딴 세상에 간다. 파리의 어느 골목길.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어디선가 택시가 나를 데리러 온다. 그러고는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가 있는 자리로 나를 이끈다.
그런 꿈같은 시간들을 보낸다.
퐁뇌프 다리. 너무 어둡게 찍혔다.
센 강을 걷는 시간이 내게 그랬다. '길'은 1920년대 예술가들과 조우했지만 나는 프랑스 아재들과 서툰 영어를 나눴다. 여행객들은 여행지에 가면 각자 모으는 기념품 컨셉이 있다.
냉장고에 붙일 만한 명소가 그려진 마그네틱을 수집하는 사람, 작은 소주잔만한 사이즈의 양주잔을 모으는 사람, 열쇠고리를 한가득 모아 주변 지인에게 나눠주는 사람, 손톱만한 미니어처들을 책상에 가지런히 정렬하는 사람, 현지 원어로 적힌 책을 사고, 특히 고서적을 찾는 사람.
그 중 나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물품을 우리나라로, 내 방으로 가져가고 싶다.
어떤 나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글'이고 '말'이다. 말과 글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며 문화를 좌지우지한다.
이 거리에서 주로 파는 품목은 그림과 서적. 100년 이상이 된 서적들도 보인다. <레 미 제라블> 2~3째 판본을 찾았지만 30만원이어서, 못 본 체 했다.
찍어도 된다고 했다.
보통 화가들은 본인 그림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저작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고유 창작물이니까.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허락했다는 것은 내가 그 물건을 구매했을 때나, 그 물건이 고유 창작물이 아닐 경우.
위 그림이 그렇다. 4장에 5유로면 뭐, 자기가 그린 건 아닐 것 같았다.
책들은 얇은 비닐로 포장돼 있다. 전부 다 로켓 배송으로 우리 집까지 보내고 싶었다. 언제 다시 프랑스를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이 점포 사장님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가서 구매할 수 있으니까.
포스터도 판매한다. 포스터 한 장에 1~2유로 정도. 파리에서 Paris에 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파리'와 Paris가 주는 어감은 다르다.
이건 진짜 골동품이다. 근본 없는 오래되기만 한 물건들. 가격도 싸다. 1개에 2유로, 3유로 정도였다. 4~5점 정도 구매했다.
왼쪽 끝에 앉아있는 저 아죠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이 그림 직접 그리셨나요?"
"어, 내가 다 그렸어. 오늘은 이 장소에서 그렸고 어제는 다리 건너편 저쯤에서 그렸지"
"어디 한 번 봐봐요. 구경 좀 해도 되죠?"
"당연하지. (가방 열고 10장 이상 보여줌). 이건 어디서 그렸고, 이건 아직 색칠 안 했고, (어쩌고 저쩌고)"
"(이 정도 봤으면 하나라도 사야되나) 어,, 이 그림이 제일 예쁜 것 같네요!"
"그치? 학생이야? 어디서 왔어?"
"네 저 한국에서 왔어요, 대학생이에요. 아저씨는 어디 사람이에요?"
"난 프롬 이태리지. 이태리에서 그림 많이 그렸지,, 프랑스는 잠깐 그림 그리러 왔어. 이태리 와봤어?"
"올, 나도 2주 뒤에 이태리 가요. 근데 이거 그림 할인은 안 돼요?"
"원래 25유로인데, 학생이니까 내가 20유로에 해줄게"
"아 진짜요? 고민돼서 그러는데, 아저씨 내일도 여기 와요?"
"내일부터 4일간 비온다더라. 내일은 안올라구. 에잇 15유로에 준다!"
"그래요, 살게요!"
결제 후 아재와 한 컷. 아죠씨한테 블로그 올려도 된다고 허락 받지는 않았다.
내가 산 그림이 프린트한 짝퉁 그림인지, 아님 이 아재가 직접 그린 그림인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나는 그림을 산 게 아니다. 센 강변 어느 아재와의 대화를 산 것이고, 이 사진을 산 것이다. '길'은 헤밍웨이를 만났고 나는 프롬 이태리 화가를 만났다.
센 강을 자연스럽게 쭉 따라가다 보면 오르세 미술관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3일 연속 박물관/미술관 타임이었다. 파리패스(뮤지엄패스)가 적용됐던 곳이었던 것 같다. 파리 3대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다.
내부는 기차역 같이 생겼다. 원래 기차역이었다. 1900년대 초에 기차역으로 이용되다가 폐역이 됐다. 그러고는 미술관으로 변모했다(1986년)
오르세 미술관은 그나마 나같은 예술 까막눈에게는 가장 익숙한 미술관이다. 고흐, 고갱, 모네, 마네, 쿠르베, 르누와르 등 서양 근대 미술의 성지라고 할까.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 대부분이 여기서 빛나고 있었다.
지금껏 가본 박물관, 미술관들 중 가장 흥미로웠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었으니까. 유명한 작품들이 가장 많았으니까.
1. 농촌 배경
밀레 - <이삭 줍기>와 <만종>.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작은 그림.
원근법이 예술이다. <배틀그라운드> 논밭 맵 일부같다. 명암 표현 때문인가. 사람들이 그림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는 듯하다.
2. 비너스
여신. 미와 풍요의 여신. 머리 뒤쪽으로 들고 있는 항아리와 물. 무슨 의미가 있다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은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주 속에서 피어난 아프로디테. 고동을 불고 있다. 균형 잡힌 몸매. 현대 미의 기준과 가장 유사한 듯 싶다. 큐피드를 업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많이 보던 분들이다. 초등학교 때, 이런 자료 사진이 나오면 '변태'라고 서로 놀리곤 했었는데 어느새 이런 작품들을 서스럼없이 업로드할 수 있는 나이가 돼버렸다. 배경은 주로 산자락 또는 바다(물)이다.
3. 고흐
<고흐의 방>
솔직히, 미술을 모르는 나에게 이런 그림은 '잘 그렸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고흐의 가치를 나는 모른다. 여러 번 듣고, 배워도 솔직히 와닿지 않는다. 천재를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론강의 별밤>
<고흐>에 대한 책도 좀 읽어봐야겠다. 이 그림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 그림과는 관계없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뉴욕에 있다고 한다)을 보며 떠올린 단상이다.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고흐는 요양원에 간다. 본인의 병을 인정한 듯 보인다. 철창 밖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윤동주가 떠올랐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담아낸 소회.
그 날밤 별을 보며 쓴 <별 헤는 밤>과 그 날밤 철창 밖을 보며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
살아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점도 둘은 같다.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 시집으로 이름을 알렸다.
평범하게 살다 죽는 생을 살 것인가, 힘들게 살다가 죽어서 전설이 되는 삶을 살 것인가.
대체로 아담한 사이즈다.
4. 모네
<우산을 든 여인>
마이 뻬이보릿이다.
모네 그림은 포근하다.
모네를 소생시켜서 나를 그리게 하고 싶다. 가격은 얼마나 할까?
르누아르 - <~ 무도회>
르누아르 할아버지는 늙어서까지 그림을 그렸다. 휠체어를 타고 붕대를 감고도 겨우 그림을 그렸던 것 같은데, <르누아르>라는 영화에서 본 것 같다.
대단한 열정 그림도 참 아름답다. 사이즈가 큰 편이다.
8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