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도 신나고 근사해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중에서
달이 떴다고 전화를 받은 시인이 신이 난 건 달이 떴다는 걸 알아서일까. 전화를 받아서일까. 낭만적 내용으로 전화를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처음 저 시를 접했을 때 내가 부러웠던 것은 달이 뜬 사실도, 근사한 밤을 보낸 시인의 감성도 아니었다. 그저 전화를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것도 용건을 전하기 위한 전화가 아니라 달이 뜬 밤의 낭만적 기분을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그 부분이었다.
낯선 곳에서 또 몇 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적잖이 긴장되고 지쳐 있던 어느 3월의 밤이었다. 늘 다정한 이웃인 그녀에게서 한 통의 카톡이 왔다.
“우리 남편이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왔어. 궁금하지 않아?”
“무슨 사진인데요?”
또래의 아이들을 한 아파트에서 키우는 사이이니, 그녀와 내가 나눌 수 있는 거라곤 우리들의 아이들이 어디서 또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겠거니. 그래, 그 모습도 참 기대되지 하며 잠시의 기다림을 즐겼다. 이내 도착한 톡에서 한 장의 사진이 왔는데 글쎄, 오래되어 차 문도 제대로 잠기지 않아 늘 불만이던 내 차가 아닌가. ‘웬 낡은 차를 굳이 찍었지?’라며 화면을 자세히 보는 순간 차체 위에 고이 누워 잠든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얼마나 곤히 잠들었는지 곁에 있다면 새근새근 숨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았다. 평소 동물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 없던 나도 금세 웃음이 났다.
그 사진은 그 뒤 며칠 동안 우리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자주 만나는 주변 지인들, 옆자리 동료에게까지 보여주는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날 갓 퇴근한 내 차의 온기가 다른 차들보다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 녀석도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똥차’라며 눈칫밥 먹던 차에 대한 애정도 새롭게 생겨났다. 고양이가 찜한 차가 아닌가. 얼마나 따뜻하고 안락하면 지하주차장 그 많은 차들 중에 내 차를 선택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 사진 한 장으로 며칠을 행복했던 건 사실, 고양이 때문이 아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곤히 자고 있는 차가 내 차라고 알아봐 준 이웃의 눈썰미와 그걸 굳이 사진으로 찍은 성의, 내게 보내주며 느꼈을 뿌듯함이 그대로 전해져서였다.
그래. 내게도 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는 사람은 없지만 고양이가 자고 있다고 톡을 주는 이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