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언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뿔싸.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
사실 아무 일도 없었다.
뻥이었다.
동굴 속에서 삼 년을 살다가 나왔다.
햇빛을 오랜만에 봤다.
나는 당분간 눈이 멀었다.
눈이 안 보이니 청각, 후각, 촉각이 평소보다 곤두서졌다.
누군가의 체취가 들린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고 커진다.
누군가의 숨 바람이 나의 어깨에 와닿는다.
/
눈을 떴을 땐 거대한 바게트가 내 앞에 있었다.
향긋한 것.
나는 바게트를 찢어 먹었다.
맛있었다.
거대한 바게트는 내 몸속에 들어와 소화가 되어 나를 이루는 성분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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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굴 속에 들어갔다.
동굴 속에서 어머니는 나의 밥상을 차리셨다.
고등어조림을 먹으며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후회했다.
...
사실 후회하는 일은 없다.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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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 살면 좋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실내 클라이밍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에만 유의하면 몸짱이 되기 최고의 조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몸짱이다.
후면삼각근과 이두, 삼두, 전완근이 발달했다.
하지만 동굴 속에서 다른 이성은 찾을 수 없다.
나의 동굴은 몇 평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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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다. 잔뜩 왔다.
동굴은 지면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어있다.
빗물이 나의 보금자리에 차오른다.
여름마다 이런 일은 잦아서 내 침대를 2층 침대로 교체했다.
쿠팡에서 시키니 금세 오던걸?
다만 조립이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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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맡에 묶어 놓은 배를 타고 부엌에 가서 라면을 끓인다.
물은 빗물을 사용하면 되니 정말 경제적이라 할 수 있다.
빗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빗물로 다시 한다.
동굴 생활은 여름에 최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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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빗물이 너무 고여있는 것 같으면 나는 굴방 문을 연다.
굴방은 비가 오지 않을 때 시간을 내어 파 놓은 굴을 이야기한다.
굴방은 또 다른 방으로 연결되는데 거기엔 내 동생 길동이가 산다.
길동이는 히키코모리로 깊숙한 방 안에서 게임만 한다.
리니지 성주인 길동이는 방 안에 살면서 나보다 부자다.
디지털노마드 시대에 길동이는 누구보다 당당하다.
길동이가 내 방으로 온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건 자기 방 변기가 막혔을 때였다.
뚫어 뻥으로 잘 해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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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 방으로 간 빗물은 길동이가 샤워할 수 있게 해 준다.
길동이는 부자 성주지만 실제로는 숱껌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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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 어떻게 전기가 있냐고?
여긴 인조 동굴이다.
나는 건축가고 내가 만든 작품이다.
왜 동굴을 만들었냐고?
왜냐면 여긴 내 머릿속 나만 아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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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