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의 런던 3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득한 런던의 동쪽으로 간다. 첫 여정은 세인트폴 대성당.
이 동네에 왔으니 당연하게도 '버로우 마켓'을 왔다. 나는 마켓보다 테이트모던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의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옛 런던의 길을 걸으며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랄까...
코로나 이후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높아진 것이 느껴진다. 한국 음식을 파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버로우 마켓에도 'Korean Chicken' 버거를 팔고 있다.
오늘의 주요 일정은 우버보트를 타고 그리니치 천문대에 가서 피크닉을 하는 것. 런던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카드를 이용해 우버보트를 타고 쉽게 그리니치로 갈 수 있다.
좋았던 곳을 다시 가는 걸 좋아하는지라 그리니치를 가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친구의 제안을 따라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배 안에는 샴페인, 커피 등의 음료와 간단한 간식을 판다. 우리는 피크닉을 위해 어깨가 무겁게 간식을 챙겨 온 터라 외부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눈치를 보았다.
타국에 와서 진상 손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배 안을 한 바퀴 둘러보니 각자 챙겨 온 간식들을 먹고 있었다. 눈치를 본 것이 머쓱할 만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도 마트를 털어 온 음식들을 꺼냈다. 선상 피크닉을 즐기다 보니 그리니치 피어에 도착했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그리니치 천문대가 보인다. 입장료를 내고 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전시관보다는 천문대 밖에 볼거리가 더 많다.
관광객의 본분을 잊지 않고 본초자오선에서 사진을 찍고 서울도 찾아보았다. 이런 구태의연한 것들이 생각보다 좋은 추억이 된다.
언덕을 올라왔다고 런던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고층빌딩이 많지 않아서 작은 언덕만 올라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의 큰 장점인데 올 때마다 고층빌딩이 늘어나는 것이 보여 아쉬움이 든다.
석양을 보고 내려가고 싶어 시간을 끌었더니 피크닉을 하기엔 너무 추워졌다. 피크닉보다 더 배부른 노을을 봤으니 다음을 기약했다. 여름에 꼭 다시 오겠다며 아쉬움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미처 못한 피크닉을 열었다. 이번엔 눈치도 보지 않고 와인까지 곁들여 당당히 즐겼다. 와인 한 잔에 흥이 오른 우리는 숙소로 가는 대신 배를 더 타고 웨스트민스터까지 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3명 중 J가 2명인 조합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이다.
빅벤과 빨간 버스를 보고, 이게 런던이지...! 라 생각하며 계획을 바꾸길 잘했다고 백번쯤 생각했다.
혼자 왔다면 가지 않았을 그리니치를 가게 된 덕에 우버보트를 타고 선상 피크닉까지 하며 호사를 누렸고, 웨스트민스터의 야경까지 마음껏 즐겼다.
함께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지만 그 덕에 누리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원래라면 가지 않았을 장소, 먹어보지 않았을 음식이 주는 기쁨과 새로움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서 시도해 보는 작은 도전들까지...
친구에게 직접 말을 하진 못했지만...
네가 있어서, 너를 믿고 마음껏 계획을 바꿀 수 있었다고, 내 안에 잠재된 즉흥성을 일깨우며 계획충인 나는 무척 즐거웠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