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짧은 호흡의 문장, 도파민 폭발하는 에피소드 덕에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겼지만, 3부에 이르러서는 혼란 속을 헤매며 앞뒤로 계속 책을 뒤적였다. 진실이라 생각하고 읽은 1, 2부의 이야기는 Lucas(Claus)가 꾸며낸 허구였고, Claus와 Klaus 사이를 한참 헤매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가려내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루카스는 고독을 견디기 위한 자구책으로 소설을 쓰고, 외로움을 버티는 방패막으로 삼는다. 무엇이 루카스의 진짜 삶인지보다는 무엇이 루카스를 살아가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루카스가 죽음을 택하는 때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형제를 그리며 외롭게 살아야 했던 50년의 세월 속이 아니라, 드디어 현실에서 만난 형제 클라우스로부터 부정당했을 때이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나눠가진 이름처럼 ‘우리’인 동시에 ‘나’이므로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클라우스의 앞에서 루카스는 우리와 함께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받게 되고, 그에게 더 이상의 삶은 불가능해진다. 존재의 증거는 기록 속에만 있다고 말하는 이 이야기 안에서 루카스는 비록 허구이더라도 클라우스가 존재한다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을 때에만 살 수 있었다.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뿌연 안갯속을 걷는듯한 이 책의 끝에 과연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것이라는 빅토르의 말이 이제 새롭게 읽힌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면 우리는 삶을 통해서 내 존재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혹여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허구에 불과할지언정 나에겐 지극히 진실이며, 내 존재의 증명인 나의 이야기를 써가는 과정 자체가 삶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