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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llOK Jun 20. 2024

선생님, 저 오늘도 토할 거예요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나는 매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래서 사랑을 갈구하는, 그저 학교에 맡겨진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내가 담임이라는 이유로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열고, 소녀와 달리 말 많은 어린이들은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숨겨진 가족의 삶을 어쩔 수 없이 엿보고야 만다.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된다.


 3년 전 우리 반에 무서운 소문?을 달고 온 여자 아이가 있었다. 고작 2학년인데 이미 입학과 함께 학교 전체에 악명을 떨친 아이였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의 모습, 그 뒤로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아이가 자라온 환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녀와는 사뭇 다르지만 비슷한 이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의 하루하루는 주변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조차 친절한 말 한마디를 못 하고, 늘 짜증을 내거나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누군가와 친해지는 법을 몰랐던 아이의 관심 끌기 전략은 떼쓰기와 어그로 끌기였으나 투정 속에 숨겨진 갈구를 이해하고 받아줄 만큼 성숙한 초등학교 2학년은 없었으므로 아이는 늘 외로웠다.


 여느 날처럼 소란스럽던 급식시간, 식사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구역질을 하더니 구토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황스러웠지만 이걸 평생의 놀림거리로 만들 순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태연하려 노력했다. 화장실로 얼른 보내 입 안과 옷을 닦게 하고, 식판과 바닥을 정리했다. 돌아온 아이는 바닥을 닦고 있는 내 옆에서 쭈뼛거렸다. 나는 “속 괜찮아? 원래 속 안 좋으면 토하는 거야. 시원해? 그럼 됐어”라며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이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못 했다. 속좁은 나는 ‘애써서 치웠는데 말야, 고맙다고 인사도 못 하냐’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급식시간 아이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불렀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었다.



‘선생님, 저 오늘도 토할 거예요.’ 장난섞인 말투였다.



 듣는 순간, 어제의 뾰루퉁했던 마음이 떠오르고, 화가 나 꿀밤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꼬여있는 저 말 뒤에 숨겨진 아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좋았구나. 사랑받는다고 느꼈구나. 책망하지 않아 줘서 그냥 말없이 자신의 실수를 닦아주고 덮어주어서 안심했구나. 그래서 더 대꾸하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어제 그 상황에서는 고맙다고 말 한마디를 못하고, 이렇게 울퉁불퉁 못난 말에 숨겨서야 표현하는 그 아이가...


 나에게는 이 아이의 삶을 바꿔줄 능력은 없었다. 내가 교실에서 무얼 해주는지에 관계없이 아이는 사랑이 고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잔뜩 인상을 구긴 채 교실에 들어섰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소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아간 후의 소녀의 삶이 궁금했다. 여전한 아빠와 더 늘어난 식구들과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삶이 걱정스러웠다. 킨셀라 부부와 함께한 여름을 기억하며 버틸 수 있을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따금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또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애정을 주고받으며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그 아이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 독후감을 끝내고 나면, 나는 또 한참은 그 아이를 잊고 지내겠지만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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