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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llOK Apr 26. 2024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천명관 ‘고래’를 읽고


 고래에는 노파, 금복, 춘희 등의 여러 인물의 이야기들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서로 엮여있는데 작가는 물리고 물린 이야기 사이에 수많은 떡밥을 던져놓은 뒤 놀랍게도 그 모든 떡밥을 회수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하나 설계하듯 짜인 이 이야기가 왜인지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필휘지로 쓰인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등장인물들이 지닌 생동감이 만들어 낸 활력이 아닐까 싶다. 금복의 성공과 몰락의 일대기는 황당무계에 가까우나 아주 오래된 신문의 한편에 그에 대한 기사가 있을 것만 같은, 지극히 사실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황당하지만 생생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삶과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각 인물들은 운명의 실타래에 얽혀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소설은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p. 188)'고 말하고 있다. 금복은 늪지대에 벽돌공장을 지음으로써 무모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되었고, 춘희는 쇠락한 폐허의 공장에서 홀로 벽돌을 찍어냄으로써 ‘붉은 벽돌의 여왕’이 되었다. 대범하고 때로는 무모한 행동의 끝에 금복은 불타버린 평대와 함께 자신 역시 폐허가 되었고, 춘희는 홀로 벽돌 만들기에 몰두한 끝에 쓸쓸하게 죽었으나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남았다. 우리의 삶은 타고난 운명의 결과라기보다는 운명에 대한 혹은 운명을 향한 각자의 행동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금복과 춘희의 삶 그리고 평대의 흥망성쇠를 곱씹으니 사진작가 김아타의 ‘온 에어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http://www.nyculturebeat.com/files/attach/images/3947428/972/572/003/7b8132ec16fd005e41a5368127be456a.JPG

 이 사진은 아주 번잡한 시간에 찍었음에도 타임스퀘어를 오가는 온갖 사람들과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노출시간을 길게 촬영해 움직이는 사람이나 사물들은 유령처럼 사라지게 하고 희미한 에너지만 잔상처럼 남아있게 했다. 몰락한 금복과 평대, 끝까지 홀로 남아있던 춘희와 그 후 오래 남은 붉은 벽돌을 보며 이 사진이 떠올랐다. 김아타 작가가 늘 말하고자 하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명제를 천명관 작가도 이야기하고 싶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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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는 꽤나 상스럽고 노골적이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목이 있지만 ‘소설은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조차 이 책을 자신 있게 쥐어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온갖 ‘OO의 법칙’을 통해 작가는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는 문장은 꽤 오래 기억할 것 같고 꽤 동의하나 이 책을 좋아하느냐 또는 다시 읽겠느냐 묻는다면 나의 답은 너무나도 분명히 ‘아니요’이다. 재미있냐는 질문에는 늘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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