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서
*너머북스에서 개정판이 나왔고(번역자 동일), 이 서평은 개정 전판을 읽고 쓴 서평임을 알림.
조선 시대를 이해하고자 본격적으로 조선 시대사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읽은 책이 권내현 선생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역사비평사)(일전에 서평 작성함)과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양반』이다. 권내현의 책은 한 노비 가문이 평민, 양반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신분 상승 욕망을 추적한 책이라면, 미야지마 히로시의 책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양반의 형성 과정과 역사적 변천과 실체를 추적하는 책이다. 각각 조선 시대 하천민과 양반을 다루는 이 두 책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으므로, 가급적 둘 다 읽는 것이 좋겠다. 특히 『양반』의 제8장 ‘양반 지향 사회의 성립’, 그중에서도 ‘민중들의 양반 지향’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둘 다 대중 교양서로 저술된 책이므로, 조선 시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용어나 개념 정리도 해가며 읽을 수 있겠다. 물론 두 권을 다 읽을 여유나 생각이 없다면 한 권만 읽어도 무방하겠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조선 시대 양반 계층의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이데올로기(주자학) 대신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영향을 주로 살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 들어서는 16세기경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남녀 균분 상속 원칙은 남자균분상속, 장남우대상속이라는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미야지마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써 주자학의 보급이 아닌 재지양반층의 전반적인 경제력 하향세를 지적하였다. 이 책에서 주요 사례로 분석하는 유곡 권씨와 저곡 권씨는 17세기 전반까지 재산 규모를 확대하였으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로 들어오면 재산 규모가 정체되거나 아니면 줄어드는 경향으로 반전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균분 상속에 따른 재산의 세분화와 이에 동반되는 제사 준행의 어려움에 대한 우려”가 일어났고 결국 각 가문 내에서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7세기 후반 이후 부계 혈연 중심의 동족 집단 결합이 강화되는데, 이 역시 재지양반의 경제력 저하가 그 변화의 추동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 변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재로써 주자학이 이용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18세기 이후 양반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하층으로까지 확산되는 현상도 “일반 농민층의 소농 경영의 안정화와 이에 따르는 가(家)의 영속성 강화”라는 사회경제적 요인 때문에 결정적으로 가능했다. 농업이 차츰 집약화되면서 기존에 비효율적인 ‘노비를 이용한 직영지 경영’이 불필요해졌고, 대신 “노비에게 일정한 토지를 빌려주고 경영을 그들에게 맡겨 그 생산물에서 지대를 받는”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소농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양반의 “지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감과 더불어” 점차 양반의 기생화를 촉진하는 한편,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천민층에게는 “경영의 안정성”과 “가(家)의 연속성, 영속성”을 실현하였다. 이리하여 천민층에게까지 족보 편찬과 동족 의식 등 양반적 가치관과 생활 이념이 정착할 수 있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이념과 사상이 있어야 하지만, 사상의 사회적·물적 기반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성리학은 중요하지만, 성리학‘만으로’ 규정되는 사회는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성리학과 ‘조선이 성리학에 경도되었다’는 맹목적인 비난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