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라는 건 신비롭다 모든 게
어느덧 식집사 8개월 차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느꼈는데 그중에서 하나는 집에 들어왔을 때 내가 아닌 생명체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한다면 거의 1년 가까이 찾아 헤매었지만..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기에 솔직히 100% 만족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만족스러운 건 복도형이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옛날 샷시라는 점.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겨울에는 목과 코에서 피가 나도록 건조함을 겪었다.
이와 같은 가장 큰 단점들을 커버해 준 건 바로 현재의 ‘식물’이었다.
식물을 막 들였던 초기에 나는 몬스테라가 키우고 싶었다. 이유는 아마도 알보라는 녀석 때문에 로망이 있었던거 같다. 여기서 또다시 등장하는 나의 전남친..
그에게 나는 집에 있는 몬스테라 한 잎만 달라고 한 게.. 한 뿌리를 뽑아서 줬다.
엄청 큰 화분에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녀석만 성장하지 못하고 비실비실한 게 갖고 오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들고 왔다고 하니 더욱더 책임감이 커져버렸다. (잎만 봐도 어딘가 아파 보이기는 한다)
선물 받은 식물 종합세트
1. 보스턴 고사리 (키우면서 알게 된 건 더피가 아닐까 의심이 되는 종이다) - 만약 보스턴이라고 하면 잘게 잘게 생기지 않은 크게 자란다고 한다.
2. 아비스 고사리 (가장 먼저 이 녀석이 들어와서 무조건 사고 싶었던 식물)
3. 무늬 아이비 (키우기 쉽다고 추천받았는데, 아이비는 손이 안 가지만 문제는 통풍 필수! 어느 날 죽는 건 막을 수 없다)
4. 초코트리 (가장 속 썩이는 녀석)
5. 황칠나무 (나무는 가정에서 키우는 게 아니다)
기존 화분을 갖고 가서 채우니 한결 든든하고 뿌듯했다. 과거의 식물들은 사장님께서 정체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육이 종류 중 어떤 거 아닌가 싶은데.. 라면서.. 저렴한 아니 들은 아니라고 하니.. 부모님께 더 죄송한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더 살펴야 했는데.. 이번에는 꼭 죽이지 말아야지!
식물을 키우면서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다른 점은 나뿐만 아니라 이 집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말을 친구한테 하니까 갑자기 "너 외로워? 남자 소개해줄까?" 이러는데..
이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문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혼자 사는 집에 나 말고 아무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집이 더 냉랭하고 싸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 느낌이 더 무서웠고 싫었기 때문이다.
푸릇푸릇하게 잘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나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비교할 무언가 필요했던 걸까?
식물들이 잘 크는 게 지금 이곳의 환경에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좋게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있는 무언가가 함께 있다는 건 내게는 사실 큰 힘이다.
화분의 원래 주인들이 있는 사진을 어디서 구했는데, 봐도 어떤 식물인지 잘 모르겠다.
식물을 키우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는, 나는 구하기 어렵고 누가 봐도 특이하고 이쁜 걸 좋아한다는 거다. 예전에 한참 드로우에 빠져 살 때는 조던을 많이 샀는데.. 당시 엄마가 그런 나를 보고 "네가 지네냐?"라는 말에 할 말이 없이 머쓱했지만 남들이 없는 또는 몇 족 없는 특별한 무언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니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근데 누구나 리미티드라는 건 가슴을 웅장하게 하고, 희소성의 가치라고 소비를 더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이런 나의 희소성의 소비는 신발뿐만 아니라.. 식물에서도 드러났다.
꽃이나 난보다는 잎이 특별하게 자라는 식물을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8개월 식집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집에 있는 종은 '알로카시아'가 되어 버렸다. 분명 초반에는 고사리가 정말 많았는데...
나는, 초보 식집사일 때 하나하나 신기하고 예뻐 보이면 집에 들이고 키우면서 집에 있는 거랑 똑같은 걸 보면 사진을 찍고는 했다. 요가원에 있는 아이비, 학교에 있는 고사리와 몬스테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딱 내가 키우고 관심 있는 것들이 보이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몬스테라가 첫 신엽을 내는 걸 보았을 때는 정말 아기가 탄생하는 기적처럼 매일매일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보게 만들었다. 사람들도 이런 재미로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닐까?
내가 식집사를 하는 걸 SNS에 드러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진짜 부지런하다."였다.
나는 게으른데 왜 부지런하다고 할까? 싶었는데 초보 식집사는 바쁘지는 않다.
그저 새로 나오는 잎을 보면서 신기하고 놀라움 그리고 경이롭다고 많이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자꾸 실수하게 되는 게 물을 자꾸만 주게 되는 일이다.
자꾸 보게 되니까... 자꾸 주게 되는 습관... 사실 좋지는 않지만... 속흙을 신경 쓰기 전에 겉흙을 신경 쓰게 되면서 그러는 것 같다.
나의 식물들은 집 한편에 줄줄이 놔뒀는데... 관심이 많은데 지식이 부족한 식집사를 만나서 그간 고생이 많았다. 식물 키우는 게 부지런한 이유는 상태를 계속 확인해줘야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공부를 해야 하고, 때가 되면 햇빛과 물과 비료를 챙겨줘야 한다.
그래도 나는 너희가 있어서 든든하다. (이 단어가 떠오르는 거 보니 외로운 게 맞는 걸 지도?)
뿅!! 하고 자라고 있는 것만 봐도 초보 식집사인 나는 내가 모든 잘하고 있는 기분처럼 뿌듯하다.
가끔 장기 해외여행을 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 "너는 아무것도 안 키울 거야 맞지?"라는 말에 맞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그 키운다는 범위가 움직이는 동물만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라는 생명도 포함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 푸릇푸릇한 나의 식물들이 날 반기는 기분이 산뜻하다.
매일 이렇게 보는 게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새로 나오는 촉들을 찾아보게 되고 아프면 검색해 보고, 온도/습도/햇빛을 찾아보게 된다. 애정을 갖고 살펴보면 아마 죽지는 않겠지?
때때로는 귀찮은 거 같다고 느낄지 몰라도 집에 내가 아닌 생명체가 있다는 게 요즘은 감사하다.
교감을 이룰 수 있는 동물이 아닐지라도, 내게 '책임감'과 '신비감' 그리고 '궁금증'이라는 게 내일을 만들어준다. 때로는 '오늘'로 머물러 버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내일이 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초록색이 가득한 내 집의 생명들은 내가 돌보는 게 전부가 아닌, 나를 살아가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