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발아: 부모님의 마음
23년 10월 이사를 하면서 부모님께서 키우던 식물과 기존에 키우던 식물 그리고 집들이 선물로 소소하게 받은 식물 이렇게 5개가 동거 식물로 있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낼 때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탓이 기존에 있던 식물들은 다 죽어버렸다.
살아 있을 당시에 화장실에서 샤워하면서 물도 줬었는데...
그 당시 만났던 남자는 나에게 집에 죽은 식물/시든 식물이 있으면 좋지 않다며.. 저 식물들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가 자주 싸우는 거 같다고 메말라 있는 식물들을 보고는 괜히 뭐라 했다.
뭐가 되었든 좋지는 않겠지만, 내심 선물 받은 것도 있고 내게는 3년이란 시간 함께 했던 식물도 있으며 본가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3개를 들고 나온 거라서 새로운 식물로 다시 바꾼다는 게 마음이 그리 편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나의 생각의 꼬리 끝에는 '씨앗을 발아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뉴질랜드에서 함께 살던 플랫 메이트가 씨앗으로 싹 틔웠던 게 생각났다. 그때 분명 마이클이 어렵다고 말했는데..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과일을 먹고 나온 씨앗으로 나무도 만들고 새싹도 쑥쑥 틔우는 걸 보니 남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고 나도 금세 배 나무, 사과나무 한 그루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마침 본가에 배가 많았던 탓에 나는 배 씨앗을 계속 모았다. 부모님께서는 쟤가 왜 저렇게 과일을 먹고 씨앗을 챙기나.. 신기하게 또는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 순간만큼 최고의 식물학자가 된 듯한 기분은 숨기지 못하고 혼자 킥킥거리면서 즐거워했다.
어디에 담아 가면 좋을지 몰랐던 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게 고작 비닐장갑이었다.
저 비닐장갑 중지에는 배, 검지에는 사과 섞이지 않게 열심히 넣고는 본가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 나는 병이 하나 있다. 바로 '컬렉션 병'이다. 괜히 2가지 종류의 씨앗만 열심히 하면 되는걸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럿 글을 보다가 망고씨앗이 싹을 잘 틔운다는 걸 보고는 망고를 사고 말았다. 평소 망고 비싸다고 잘 사 먹지 않았던 나인데 씨앗 발아 하는 게 뭐라고 이곳까지 나를 이끌어버렸다.
망고 씨앗은 겉에 씨앗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는걸 가위로 잘라서 그 안에 진짜 씨앗으로 발아시켜야 한다.
사진 속에 보이는 저 알맹이가 망고 씨앗인데 난 사람들처럼 1주일도 안돼서 새싹이 '안녕?'하고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희망사항이었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계속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는 걸 말하면 재미없지만 싹을 틔운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찾아봤던 조건에는
그래서 사진처럼 키친타월을 적셔서 감싸주고 밀폐한 뒤에 검은 봉지에 감싼 뒤에 와이파이 공유기 위에 올려놨다.
이때까지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초록초록 잎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신나게 깠던 과일은 화이트 와인이랑 숙성해서 샹그리아를 만들어 버렸다. (뜬금없지만 망고가 살린 맛이었다. 애플망고, 기본망고 2 종류를 넣었는데 둘 다 맛에 한몫해주었다.)
잘.. 크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열어보니 이렇게 겉에 껍질은 물러서 다 벗겨지고 하얗게만 남았다. 내 생각에는 내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가 자주 꺼내서 봤던 거 문제였던 거 같다.
기다림이 모든 필요하다는데 나는 궁금해서 이리보고 저리보고 계속 들여다보는 게 좋은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이번 계기로 더 알게 된 거 같았다.
누구나 성공한다는 아보카도 씨앗 발아. 며칠은 겉에 있는 껍질을 놔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껍질을 벗겨주는 게 좋다는 말에 급히 벗겨줬다. 깊은 칼집이 좀 신경 쓰였지만 사람들은 이쑤시개도 푹푹 쑤셔서 발아시키는데 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혼자 합리화를 하면 두근두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궁금하다고 열어봤던 나는 씨앗이 썩어가는 걸 발견했다. 아마 보통 씨앗 발아를 찾아보면 이런 사진은 보지 못했을 거다. 냄새부터 심상치 않게 음식물 썩은 향을 풍기면서 "나 죽었어!!!"라고 외치는데 처음 발아를 도전해 보는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괜찮을 것이라고 애써 넘겼다.
하지만 어느 날 두 개로 쫙! 갈라지고 거뭇한 게 어쩐지 이건 아니구나 느껴서 빠르게 보내줬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다시 시도하면 싹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 버리고 씨앗이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아보카도 씨앗만 남긴 채.. 전남자친구로부터 식물 5개를 선물 받아서 식집사가 되었다.
사실 데려오는 게 쉽지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아하는 것도 남이 하는 건 쉽지 내가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씨앗으로 있을 때는 따뜻하고 촉촉하고 어둡게 해 주면 뿅! 하는 건데 이제 본격적으로 자랄 때는 환경적인 온도와 습도, 햇빛 모든 걸 신경 써줘야 하고 외적인 부분도 신경 써줘야 하고.. 사람 키우는 거와 똑같은 것 같았다.
옛날에 엄마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라고 했는데.. 나도 내 식물들한테 할 수 있는 말이 "나도 식집사는 처음이라 그래.." 이 말이 참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더 어떻게 살펴봐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과 다 복합적인 감정이 엉켜 있는 느낌이다.
자식을 낳아야지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는데.. 나는 식물을 키우면서 작은 1%라도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한걸음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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